한 여성이 어떤 남성에게 끌려가는 것을 누군가가 봤다. 그녀가 그에게 폭행 당하는 소리를 누군가가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부부싸움인지 알았다고 한다. 가까스로 그녀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부부싸움인지 알았다고 한다. “누가 그러는 거에요?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들어갔어요? 주소가 어떻게 되요?”라는 질문은 “아는 사람인 거 같은데”라는 혼잣말과 함께 그녀의 애절한 호소를 비껴갔다. 그녀의 공포, 그 속의 간절한 희망, 하지만 그것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뒤의 절망을 생각해본다.

마지막 통화 속의 경찰의 말들은 권력관계를 반영하며 권력의 시선을 대변한다.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남편은 부인의 신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용인받는다. 아는 사람이라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침해가 쉽게 용인된다. 설령 낯선 사람이라도, 여성이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권력관계를 인정한 것이 된다. 사후에 고발한다 할지라도 피해자의 호소는 변심으로 취급될 뿐이다. 여성이 소유물로 전락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남성의 사생활로 탈바꿈하고 만다. 권력의 시선은 피해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의심하고 따지는 것. 아는 사람이라면, 장소가 집이며 자의로 들어갔다면, 성폭력이 아니라고 가정하는 것. 피해자는 모든 의심을 해소하고 범죄사실의 성립을 입증해야 비로소 자신의 호소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7분의 통화시간 동안 그녀는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판단의 주체가 타인이라는 점은 권력관계를 더욱 노골적으로 대변한다. 그녀의 피해를 사소한 것과 심각한 것의 잣대로 구분하는 것은 경찰의 몫이었다. 그들의 눈에 피해자의 호소가 생명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 보이기에, 구태여 경찰력이 총출동할 필요는 없는 ‘단순’ 성폭행으로 규정한다. 

최근 검사가 여기자를 술자리에서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변호사협회는 기자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권력구조 속에서 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아래 사람이 처신을 잘못해 높은 사람이 실수했다면, 책임이 아래 사람에게 있음은 당연하리라. 가해자는 그렇게 피해자를 침묵시키고, 폭력은 실수로 전환된다.

대학원생 실태 조사에서, 교수와의 관계에서 ‘성희롱 및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이 23명에 이른다. 23명이 재수가 없어서, 혹은 몇몇 ‘비정상적인’ 교수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그런 경험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피해자 홀로 감당해야 했던 것은 학교 내 권력관계 때문이다. 그 속에서 피해자들은 도리어 가해자에 “잘못했어요”라고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단순’ 성폭력이란 없다. 성폭력이 발생하는 것, 그리고 성폭력이 가려지는 것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성폭력은 기존의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작동하며, 동시에 그것을 공고히 만든다. 폭력이 언제나 권력의 흐름을 따라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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