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 경악시킨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
국민들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불합리한 주장
국민들의 책임이라면
무능함 보여준 여당 지역주의로 지지한 것

 

지난 1일(일) 수원에서 20대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검거 이후 연이어 매스컴을 뒤덮은 이 사건의 논쟁점이자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그 살해 방법의 잔혹성보다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의 믿어지지 않는 무능함이었다. 112에 간신히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경찰은 무의미한 질문만을 거듭하다 피해자를 구해낼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 버렸고,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신고 후 무려 13시간이 지나서야 싸늘한 주검이 된 피해자를 발견했다. 여기에 최근 사건 당시의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의 목소리는 연일 높아만 가고 있다.
 
그러던 중 주요 일간지의 한 칼럼에 이런 제목의 글이 실렸다. ‘수원 살인, 당신도 공범이다.’ 눈길을 잡아끄는 이 글의 주장을 간략히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는 우리들의 무관심과 방관이 결국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런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과 그러한 의식을 가진 우리들이 수원 살인의 공범이다.” 그런데 듣고 있자니 조금 당황스러운 구석이 없잖아 있다. 아니, 그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수원 살인사건의 근본적 책임은 당연히 어이없는 늑장대응과 성폭력 사건에 대한 안일한 의식, 그리고 무책임한 태도로 피해자 구조를 게을리한 경찰에게 있다. 그런데도 이 어설픈 프레임은 경찰의 무력함은 슬그머니 감춰둔 채 애먼 국민들과 사회 전반의 의식구조를 비난하고 나선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위한 약속이나 경찰 시스템 차원의 반성 없이 명백한 잘못을 계속해서 숨기고 책임을 떠넘기는 데만 급급한 경찰의 태도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 더욱 당황스러운 점은 이렇게 눈앞의 진실을 못본 척 외면하는 행태가 꽤 일반적이라는 점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수원 사건과 같은 범죄는 사형 집행을 통해 막아야 한다는 갑작스런 주장을 펴고, 언론에서는 장난전화가 이번 경찰 대응 문제를 낳았다며 장난전화를 엄벌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국민들 전체에게 ‘집단 무의식’을 죄목으로 공범의 혐의를 씌우기에 이르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결백을 물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지 않은가.
 
이번 사건으로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 직전에 터진 국가의 민간인 불법사찰 건으로 인해 여당의 도덕성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거대한 두 사건이 총선 직전에 연이어 터진 시점에서 여당은 아마 ‘망했다’고 머리를 감싸쥐었을 텐데, 총선 결과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아무리 이 사건들이 MB정부하에서 시행된 ‘과거의 일’이고 여당이 그 과거로부터 쇄신을 감행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이 사건들과 여당이 그렇게 쉽게 분리돼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행복한 눈물’을 흘리던 여당 수뇌부조차 이 예상치 못한 행운에 의아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 승리의 힘은 바로 박근혜 위원장의 ‘전략’도 아니고 야권연대의 괄목할 만한 ‘무능함’도 아닌, 이 사건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지역주의에 젖어 관습적으로 여당을 선택한 무비판적 유권자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역주의에 함몰된 이들의 선택은 이 노력을 무용하게 만들어버렸을 뿐 아니라 공권력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예컨대 불법적으로 우리들을 감시하고, 그러느라 바쁜 나머지 누군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에 무관심해질 만큼 제역할을 망각해 버린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권력을 부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네들에게 다시 확인시켜 줬다.

물론 경찰을 필두로 한 공권력과 비전 대신 무능함만을 보여준 야권연대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역주의 앞에 눈뜬 장님과도 같은 어떤 이들의 행태 앞에서 모 일간지의 칼럼 제목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과연 우리는 정말로 결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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