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말했다. “이 나라 역사가 잘못됐다면 그것은 주류가 이끌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역사에 그래도 덜 부끄러운 기록들이 있다면 그것은 비주류가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만들어낸 순간들이 있어서입니다.” 시인의 의중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이 말이 한반도 남녘에서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해 몸 바친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여겨진다. 덜 부끄러운 기록들을 되새겨 본다.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북녘에 소련군이 남녘에 미군이 진주하면서 남쪽에선 친일 세력 중심의 반공 극우 세력이 득세했다. 제주 4·3 항쟁, 여수·순천 사건 등을 거치면서 이남의 진보 세력은 소멸돼 갔으며 6·25전쟁을 통해 그들의 활동은 종지부를 찍었다. 척박한 상황 속에서 조봉암이 이끈 진보당이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약진하면서 기대를 모았으나,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 정부에 의해 당은 해체되고 조봉암은 사형에 처해진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진보 세력을 위한 공간이 열렸으나,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대다수 혁신 세력을 용공으로 몰아붙여 궤멸 상태에 빠뜨린다.

전두환의 쿠데타로 군부 독재는 그 실낱같은 명줄을 이어갔으나 결국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사망 선고를 받게 됐고, 음습한 공간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던 진보 세력은 밝은 햇빛 아래로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1987년 대선에서 백기완 민중 후보를 추대했고, 1988년 총선을 대비해 ‘민중의당’을 결성했으며, 1990년 ‘민중당’을 만들어 지방선거 및 총선에 후보를 냈다. 햇살이 너무 따가웠던 탓일까. 연이은 참패에 무기력증만 더해갔다. 야속한 현실에 환멸을 느낀 몇몇 사람들은 기존의 보수정당으로 투항했지만,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믿은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1997년 대선을 맞아 ‘국민승리21’을 결성해 권영길 후보를 추대했고,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을 창당해 조금씩 성과를 내더니 마침내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43년 만의 원내 진출이었다. 민노당은 구시대적 한국 정치 풍토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의 모든 선출직 및 공직 선거 당선자에 대해 당원이 소환할 권리를 갖는 당원 소환제,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를 당원이 직접 선출하고 후보의 50% 이상을 여성에 할당하는 제도 등을 도입해 이 시대 민주적 정당 운영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 이후 갈라서기와 재결합을 거쳐 탄생한 통합진보당은 이번 19대 총선에서 13개의 의석을 확보했으나,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행위와 이를 둘러싼 내홍으로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거대한 괴물에 맞서 싸우면서 점점 그것과 닮아갔던 것일까. 부딪치며 뒹구는 과정에서 입은 내상을 품은 채 이제는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듯 보인다. 덜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진보정당으로 거듭 나길 기대한다.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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