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2015년부터 미국 의대 입학시험(MCAT)에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항목이 포함된다는 발표가 몇달 전 있었다. 미국의과대학협의회(American Association of Medical Colleges)가 10여년 동안 준비해 올 2월에 승인한 이번 결정에 따르면, 과학적 의학 지식 외에 ‘환자의 건강을 둘러싼 심리학적·사회학적·생물학적 토대’를 이해하고 인문사회학적 문제를 분석·추론하는 능력이 평가항목에 포함된다. 미국의과대학협의회의 회장인 대럴 커시(Darrell G. Kirch)는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과학적 지식 그 이상의 일이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며 이번 결정의 의의를 밝혔다.

미국의과대학협의회의 이번 결정은 오늘날 ‘좋은 의사 혹은 의사다운 의사가 되는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 기준이 아주 새롭지도 않을 뿐더러 계속 부침을 겪는다는 점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서양의 의학은 19세기 중반부터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 배경으로는 흔히 실험적 방법과 기구의 도입, 의학 교육의 개혁, 병원의 발전을 꼽는다. 청진기, 검안기, 후두경과 같은 실험·진단 장비들, 전염성 질환의 원인균을 규명한 파스퇴르와 코흐의 연구, 그리고 이를 교육하고 실습하는 대학과 병원이 의학의 진보를 이끌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최신식 실험의학이 발전하던 중에는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좋은 의사란 주거환경부터 생활방식까지 그 환자의 삶 전체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병원을 방문한 환자의 질병을 몇 가지 실험·진단 장비로 진찰하고 치료하는 최신의 실험의학은, ‘좋은 의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나아가 이들은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 지식뿐 아니라, 중세 이래로 의사가 되기 전에 교육받았던 교양과목(논리학, 수사학, 문법, 라틴어 등)도 깊이 있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최신 의학교육을 받은 젊은 의학도들은 당연히 거부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의사다움’을 둘러싼 이견은, 실제 1880년대 후반 미국의사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최신 실험기법을 사용한 의학논문과 전통적인 의사다움을 강조하는 논설이 동시에 실리는 이색적인 풍경도 낳았다. 그리고 인간의 질병이 복잡해지고 의학 지식도 여러 분야로 점차 전문화되면서, ‘좋은 의사’의 기준은 당연히 복잡한 질병을 이해하고 이를 치료할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것으로 변해 갔다. 물론 인문사회학적 소양이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았겠으나, 저울의 팔은 눈에 띄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번 미국의과대학협의회의 결정도 어찌 보면 기울어진 균형을 다시 고르려는 시도가 아닐까?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저울의 양팔이 이리저리 요동친다 해도 그 중심에는 의사를 의사답게 만드는 본연의 역할, 즉 ‘환자를 돌보고 치료한다’는 소임이 있었다. 그 소임을 어떻게 다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기준들이 저울을 흔든 것일 뿐이었다. (물론 이런 논쟁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역사적 해석들이 있다.) 그리고 이를 등한시하는 사람은 당연히 의사로 불릴 수 없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학자를 ‘학자답게’, 학생을 ‘학생답게’ 그리고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본연의 소임이 있지 않을까? 시대가 달라지고 기준이 바뀐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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