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분석가 담화'로 읽어낸 난해한 현대 미술의 실마리
예술 작품을 깊이있게 분석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더 풍부한 텍스트를 이끌어낼 수 있어

지난 3일(목) 신축된 두산인문관(8동)에서 제86회 미학과 콜로키엄이 열렸다. 미학과 콜로키엄은 둔스 스코투스의 ‘자기운동 이론’뿐 아니라 보들레르의 ‘예술가-주체’ 개념 등 미학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갖고 2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번 콜로키엄에서는 ‘라캉의 담화이론과 미술’이라는 주제로 남인숙 강사(홍익대 미학과)가 발표를 진행했다.

이번 발표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담화이론, 그중에서도 ‘분석가 담화’의 개념을 갖고 뒤샹의 작품 「tu’m」을 분석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 평론을 하면서 동시에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발표자 남인숙 강사는 그의 논문 「담화이론과 뒤샹의 성적현실」을 바탕으로 이번 강의를 진행했으며 “라캉의 이론들이 난해해 걱정되지만 내가 이해한 바대로 쉽게 풀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서두를 열었다. 미학과 전공학생들과 조교들을 포함해 십여명 안팎의 청중들이 모인 이번 발표는 조용한 분위기 아래 발표자와 학생들이 가까이 앉아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크 라캉, 그리고 그의 담화이론=자크 라캉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로 인간의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돼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했다. 또 라캉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주체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데 주력했으며 정신분석학에서 주체와 타자의 관계해명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발표의 바탕이 되는 라캉의 담화이론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담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남 강사는 “라캉에게 담화는 주체가 구성되기 전 이미 작동되고 있는 무의식 속의 소통체계로 설명되며 담화이론은 무엇을 욕망하고 왜 그 욕망을 타자에게 호소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라 정의했다. 즉 담화이론은 고유한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지 답하는 것이며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욕망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라캉의 담화이론은 주체와 타자의 욕망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맺어지는가에 따라 각각 ‘주인 담화’, ‘대학 담화’, ‘히스테리 담화’, ‘분석가 담화’로 구분된다.

담화이론 중에서도 뒤샹의 작품과 연관돼 발표의 중심이 된 ‘분석가 담화’는 ‘주인 담화’와 정반대되는 소통구조를 보인다. 주인 담화는 주체가 결여됐다는 사실, 즉 기표로부터 소외돼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따라서 주인 담화에 의해 주체는 결여 없는 주체로 가장하면서 자신의 확실성을 타자에게 의지하는 모순적 주체로 남는다.

이에 반해 분석가 담화에서는 타자의 자리에 ‘결여의 주체’가 자리하며 이 ‘결여의 주체’는 자신의 욕망대상과 함께 구성한 환상을 통과해 새로운 기표, 자신을 대신할 주인 기표를 산출하게 된다. 이러한 분석가 담화는 타자가 주체에게 질문으로 되물으며 주체 자신에게 그 해답을 찾게 하는 구조를 띠게 된다. 이때 예술 작품을 ‘해석이 멈추지 않는 어떤 기표’로 본다면 타자의 자리에 이 예술 작품을 놓음으로써 분석가 담화의 관점에서 작품의 해석 가능성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라캉의 ‘분석가 담화’로 읽는 뒤샹의 「tu’m」=무의식 역시 언어처럼 구조화 된다고 주장하는 라캉의 이론과 함께 그의 담화이론은 단순한 의사소통이론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의 담화이론을 분석하는 것은 새로운 작품의 출현과 해석 등 작품의 근거를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남 강사는 “분석가 담화는 해석이 불가능하고 모호했던 작품에 대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남 강사는 이렇듯 라캉의 ‘분석가 담화’가 문자텍스트뿐 아니라 미술을 비롯한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뒤샹의 「tu’m」(1918)을 제시했다. 작품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면 ‘너는 나를’이란 뜻이다. 술어가 없는 형식으로 붙여진 이 작품의 제목은 해석의 가능성이 무한히 열린 상태, 곧 확실성을 가지고 단언을 내리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뒤샹의 「tu’m」에는 자전거 바퀴, 스토파주, 중앙을 가리키는 손가락, 코르크 병따개가 나타난다. 각각의 대상들은 서로 연관되지 않으며 뒤샹의 단편적이면서도 순간적인 경험 속에서 즉흥적으로 선별된 것이다. 이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어딘가를 지시하는 손’이다. 어딘가를 지시하고 있지만 그 지시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은 손의 모습은 작품의 이름처럼 열린 해석을 지향하고 있다. 남 강사는 “뒤샹의 「tu’m」에서 해석하기 힘들었던 그림의 대상들과 지시하는 손의 모습은 뒤샹 무의식의 욕망을 드러내는 원풍경이라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질의응답시간에 신혜경 교수(미학과)는 “분석가 담화라는 것을 여러 작품 중에서도 왜 굳이 뒤샹의 작품 「tu’m」으로 설명했는가”에 대해 질문했다. 남 강사는 “전체적으로 뒤샹의 작품은 난해한 만큼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뒤샹의 「tu’m」은 술어 공간이 비어있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작품 해석을 위해 무의식의 영역까지 포함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남 강사는 “여전히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예술작품이 많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개방적인 표현 어법을 앞으로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번 발표에서 소개됐던 라캉의 담화이론과 같이 그동안 해석하기 어려웠던 난해한 현대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시도를 통해 예술 텍스트에서 보다 풍부한 논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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