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환경’ 과 관련된 수식어가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다. ‘녹색 성장’, ‘친환경 개발’과 같이 어떤 명사에든 ‘친환경’과 관련된 수식어만 붙이면 기존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어구가 되는 탓인지, 곳곳에 ‘친환경’이라는 말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상업 제품들의 등장이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고 하는 환경 문제에 대한 두려움을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환경오염을 막는 데에 유효하게 기능할 수 있는지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에코의 함정 : 녹색 탈을 쓴 소비자본주의』 의 저자 헤더 로저스는 뉴욕 타임즈 매거진과 마더 존스, 네이션 등에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겸 저술가다. 전작 『사라진 내일: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에서 미국 가정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의 역사와 정치를 추적했던 저자는 이번 저서를 통해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덧입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들이 오히려 반(反)환경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대량 생산’을 테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대량 생산-대량 소비’ 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순환구조하에서 ‘친환경’과 관련된 수식어를 달고 있는 제품들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고 진정한 의미의 환경 친화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한다. 환경 친화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덜 쓰고 덜 소비해야 하는 것인 만큼, 소비자들에게 대량 소비를 장려하는 현재의 친환경은 그저 눈가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본래 의미대로 환경 친화적인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소비자들에게 심리적으로 환경 오염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량 소비를 위한 일종의 면죄부를 제공하며 이는 자본주의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도 언급한다. 결국 저자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계에서 ‘친환경’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눈가림의 대표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가령 ‘생물 자원’으로부터 얻어지는 바이오연료는 최근 친환경적인 대안운송연료로 각광받으며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순식간에 주요한 연료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충분치 않은 식량, 삼림 자원을 연료를 생산하는 데 쓴다는 문제점을 차치하더라도, 무분별한 곡물 재배와 벌목 등으로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환경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연료가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바이오연료를 만들어내는 발효, 증류의 과정 자체가 고에너지를 요하는 과정이기에 화석 연료와 비교해 환경 오염이 덜한지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편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추측 속에 바이오연료의 대량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환경 오염은 과학기술의 문제이므로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과 달리 저자는 ‘환경 오염은 자본주의의 문제에 의한 것으로 사회구조를 재편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 오염이 저자의 주장대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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