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김성중 소설가

사진: 김은정 기자 jung92814@snu.kr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성중 소설가는 “오늘 우리가 만난 것도 모두 소설이 될 수 있어요”라며 밝게 웃는다. 항상 이야깃거리를 생각하며 사소한 일상의 순간도 역시 소중하게 여기는 그를 유난히도 햇살이 뜨거웠던 어느 초여름 날씨에, 홍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가는 대학 시절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도 언젠가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던 그는 서른이 넘어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전업 소설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문단에서도 곧 환영을 받았다. 그는 웹진문지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힘겹게 첫 소설을 끝낸 후로 신호등 앞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저절로 이야기 입자가 달라붙었다”는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허공'에서 펼치는 상상의 나래

김성중 소설가의 첫 소설집인 『개그맨』에 실린 9편의 단편 작품들은 대체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조그마한 상상의 실마리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일상적인 소재에 환상성을 배가하는 장치를 통해 자신만의 상상력을 소설 속에 펼쳐낸다. 그렇게 구현된 작품 속 일상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대로의 생활이 아니다. 머리카락 대신 사람들의 머리에 꽃이 피고(「머리에 꽃을」), 다른 사람과 그림자가 서로 바뀌어 사회가 큰 혼란에 빠지기도 하며(「그림자」), 주변의 말하는 의자들과 서로 대화하기도 하는(「내 의자를 돌려주세요」) 등 일상 속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일련의 사건들이 이야기를 구성한다.

거리로 나간 알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움직이는 꽃들이었다. 팔다리가 달려 있고 옷까지 갖춰 입은 꽃이다. 자세히 보니 꽃 아래로 사람 얼굴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머리통에도 저마다 꽃이 피어나고 있던 것이다.…그의 머리에는 시장의 권위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강아지풀이 펄럭이고 있었다.(「머리에 꽃을」)

우찬제 문학평론가는 “허공에 때로는 자유롭게 때로는 위태롭게 만화경을 가설하고 그 만화경에 비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이야기로 짜맞춘다”고 평했다. 이처럼 작가는 현실 세계를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떠 있는 듯한 허공에서 현란한 무늬로 꾸며진 만화경을 통해 현실 세계를 조망한다.

환상과 상상, 지극히 현실적인

작가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고 환상적인 요소를 활용해 소설을 쓰는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현실적인 소설을 쓰기 위해서다. 김성중 소설가는 “현실을 그대로 쓴다고 해서 리얼리티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냄으로써 잘 드러나지 못할 수 있는 현실 속 장면들을 오히려 더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작가는 「허공의 아이들」에 담긴 문제의식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소년의 키는 계속 자라났다. 멸망 직전의 세계에서도 소년의 성장판은 닫히지 않았고, 소녀는 달거리를 거르지 않았다. 그래 봐야 소년은 노동할 곳이 없고 소녀에게는 아이를 낳을 세계가 사라졌는데 말이다.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어디선가 마지막으로 남은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뼈가 자라는 소리였다(「허공의 아이들」).

「허공의 아이들」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끝없이 땅이 꺼지고 집은 한없이 하늘로 올라가는 상황이 그려진다. 계속 상승하는 집에 갇혀 꺼지는 땅에 발을 딛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소년과 소녀가 있다. 그러나 소년과 소녀는 계속 성장 중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계속 자라는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이 발딛고 살아갈 세계는 점점 소멸해 간다. 자라나는 그들에게 있어야 할 내일의 밝은 미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이라는 세계가 발생시키는 감수성으로 현실과 유사한 세계를 만들었다”고 밝힌 작가는 ‘허공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마지막 남은 땅과 겹쳐 들리는 뼈 자라는 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 실업 문제 등에 절망하는 청년들의 비명이자 한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갖가지 환상적인 도구들로 이야기를 주조하지만 결국 작가가 쓰고자 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소설이다. 표현 방식이 어떠하든 “시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소설”이야말로 현실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종말인지 창세인지 모를 지금 이 시대에 소설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어떤 소설을 쓰든 당대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한없이 무거운 현실을 담는 가벼운 종이 한 장

작가가 포착해낸 현실은 어둡다. 파국의 불안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과도한 성장의 시대에 놓인 청년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도 무겁고(「허공의 아이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어깨도 무겁기만 하다(「순환선」).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모두 마음 속 상처 하나쯤은 갖고 살아가지만(「간」) 우리에게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조차 없기 일쑤다(「그림자」). 이렇게 힘든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더라도 또다른 질서는 우리를 옥죄어 올 것이다(「머리에 꽃을」). 그러나 힘들고 무거운 현실을 그려내는 작가의 화법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평일 낮 강남역 앞은 복잡하지도 한산하지도 않다. 대도시의 포근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 졸리고 홀가분하다.…간을 빼놓은 토끼처럼. 거북이 그런 제안을 하기 전까지 내가 토끼인 줄 몰랐다.(「간」)

21세기 서울, 전래 동화 속에서 간을 두고 추격전을 펼쳤던 토끼와 거북이가 우스꽝스럽게도 강남 한복판 카페에서 간을 내놓는 것을 두고 회담을 하는 장면, 용궁의 토크쇼로 불려가 자기의 간을 용왕에게 바치겠다며 자기를 홍보하는 여러 토끼들의 모습, 혹은 육체와 분리돼 다른 사람의 것과 뒤죽박죽으로 섞인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와 함께 옮겨가 자아 정체성으로 부지불식간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처럼 작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과 반전으로 실제로는 무겁기만 했던 현실의 모습을 한없이 가볍게 담아내면서도 이 현실의 묵직함을 놓치지 않는다.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가볍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무겁게” 표현한다는 출판사 서평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작가는 지금 이 시대를 올바른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질문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시기, 따라서 소설 역시 많이 나올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나’는 피해갈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그들이 직접 발딛고 살아갈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며 시대의 ‘키잡이’임을 자처하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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