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란다면 바라지 말라
바란다면 바라지 말라
  • 박차리 부편집장
  • 승인 2012.05.06 0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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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넘쳐나는 간접광고
자본이 움직이는 대중·상업영화 추세 속
현실과 타협 거부한 감독의 씁쓸한 사퇴
작가와 감독의 영화는 어디에 있나

1.
요즘 공중파 3사는 화려한 배우진과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드라마 3편을 동시에 방영하며 ‘수목극 대전’ 중에 있다. 매주 올림픽과 월드컵이 동시에 열린 것 같은 짜릿한 고민을 즐기며 이 드라마, 저 드라마를 옮겨 보는데 보는 드라마마다 PPL(간접광고)의 향연이다. ‘수목극 대전’이 3사 간 경쟁이라면 드라마 안에선 ‘PPL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한쪽에선 “하트 도넛을 더 채워 넣어”라며 드러내놓고 형형색색의 도넛을 인테리어처럼 활용하고, 다른 한편에선 버젓이 주연 배우가 광고한 라면을 먹음직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주연 배우의 모습을 몇 컷에 나눠 길게 비춘다. 이쯤 되면 가히 ‘도넛 게이트’나 ‘라면 게이트’를 의심해볼 만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도넛은 커피와 함께 따뜻하게 먹어야지”라는 낯 뜨거운 대사를 썼을 작가를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 한편이 짠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돈을 빌려 하는 예술’이니 별 수 없지 않겠냐 생각하면 PPL로 불편해졌던 감흥은 TV 전원을 끄는 순간 찰나의 인서트 숏처럼 사라져 버린다.

2.
잡지를 뒤적이다 평소 좋아하던 감독이 고개 숙인 채 침묵하고 있는 사진에 눈이 갔다. 사진 옆에는 빛의 감독 이명세가 100억 대작 「미스터K」에서 하차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제작사인 JK필름이 「미스터K」 초반 촬영 편집본을 살펴본 후 ‘이미지만 보일 뿐 내러티브가 없다’며 촬영을 중단,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며 시작된 갈등이 종국엔 감독의 하차로까지 이어졌다. 존경하는 선배 감독이 대중·상업영화에서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던 JK필름은 이제와 대중·상업영화로서의 「미스터K」와 이명세 감독은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감독의 스타일을 부정,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애초 이들은 왜 굳이 같이 일을 시작했을까. 이미지를 중시하는 특유의 스타일로 이미 시네아스트의 반열에 올라선 중견 감독, 더욱이 ‘존경하는 선배’의 영화 철학을 제작사가 몰랐을 리가 없다. 좋아하는 선배에게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대규모 대중·상업영화에서는 때때로 입맛에 맞게 자신의 스타일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나름의 충고를 전하기 위함이었을까. 자본이 창작자의 상상과 스타일을 마음대로 요리하게 둘 수는 없다며 끝까지 대응하던 이명세 감독은 자본의 무게에 눌려 결국 고개 숙였다. PPL 장면을 썼을 작가를 떠올리며 느꼈던 씁쓸함이 다시금 폐부에서 올라옴을 느낀다.

3.
최근 드라마의 열띤 PPL과 이명세 감독의 하차를 둘러싼 논란 사이에는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팽팽한 긴장감의 장력이 흐른다. “돈은 패러다임도 바꿀 수 있다”는 잔뼈 굵은 어느 스포츠 감독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돈으로 포장된 주장은 흡사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대의적으로 따라야하는 주장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자본에 따라 재단된 생각이 공감 받을 수 없다. 밤 10시에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뒤로하고 TV 앞에 앉은 시청자에게, 스스로의 현실에서 시공간적으로 잠시나마 격리된 가공된 현실을 좇아 영화관을 찾은 관객에게 드라마와 영화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보는 자본의 검은 속내는 아무리 윤색하려해도 더없이 투명하게 드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돈을 향한 맹목적인 야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제작사의 그간 행동들이 어떤 비판을 받아왔는지 보라. 도를 넘은 도넛 PPL로 드라마 「더킹 투하츠」는 알고 보니 그 이름이 ‘던킹 돈허츠’에서 온 것이더라는 조롱 섞인 비판에 시달려야 했고 이명세 감독과 갈등을 빚은 JK필름의 전작 「7광구」는 보기 좋은 볼거리를 모아 관객들의 흥미를 잡아끌려다 누구 말처럼 ‘내러티브가 없는’ 대작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자본이 예술에서 작가와 감독의 자리를 탐해 화려한 비탄만 남아버린 드라마와 영화에 대중들의 불만의 명세서는 쌓여만 간다. 대중은 더이상 자본의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작가의, 감독의 영화는 찾을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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