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개선 꾀하고는 있지만 표절의 명확한 개념과 기준을 명시한 가이드라인과 완전한 표절 예방 시스템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
논문량 늘리기 등 실적 쌓기식 학계 풍토 성찰과 연구 윤리 확립이 유일한 예방책

또다시 공직자의 논문이 표절로 밝혀지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일고 있다.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는 당사자의 말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반복되는 자성의 목소리에도 아직까지 표절이 사라지지 않는 학계의 속사정이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2005),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논문 표절 의혹 및 사퇴(2006) 등 크고 작은 표절 사건이 학계, 문화계, 예체능계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젠 논문 표절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 상황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당사자로서는 가장 그럴 듯한 변명인지도 모르겠다.

학계에서는 다시금 표절의 근본적 원인을 짚고 해결을 모색해 보자는 분위기다. 연구윤리와 관련해 꾸준히 정책개발 및 연구를 해온 이인재 교수(서울교대 윤리교육과)는 “그동안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을 때만 표절 문제가 쟁점화 됐다가 금세 잠잠해졌다”며 “이제 개인과 학문공동체, 정부 모두가 나서서 확실히 해결할 때”라고 말했다.


무엇이 '표절'인가

일차적으로 논문 표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표절로 볼 것인지다. 학문적 글쓰기에서 표절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학문 분야마다 표절의 범위나 수준 등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표절에 관해 완전히 합의된 개념을 이끌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에서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표절의 일반적 특성은 분명히 있다. 표절의 영어 단어인 ‘plagiarism’은 납치자를 뜻하는 라틴어 ‘plagiarius’에서 유래했다. 즉 표절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정신적 산물(brain child)을 훔치는 행위인 것이다. 표절에 매우 엄정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 표절을 “타인의 것을 인정하지 않은 채, 또 타인의 것을 사기꾼 자신의 업적으로 취하려는 의도에서, 타인의 생각, 방법, 활자화된 말들을 수용한 특수한 종류의 도둑질”(미국대학교수협의회, AAUP)이라는 강도 높은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국내 학계가 표절을 명시적으로 문서에 규정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을 계기로 연구윤리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졌고 이에 정부, 대학, 학회가 연구윤리를 제도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표절의 범위 및 형태를 제시한 지침들을 제정해 나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마련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2007년 제정, 2011년 개정)의 경우 연구 부정행위(Research Misconduct)로서 ‘위조(Fabrication)’, ‘변조(Falsification)’, ‘표절(Plagiarism)’,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 등을 구분하고 있으며 ‘표절’을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결과 등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로 다소 넓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이인재 교수와 이정민 명예교수(언어학과) 등은 지난 2007년 『인문사회과학분야 표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도 했다. 여기서 제시된 표절 판정의 최소 기준은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표현이 그대로 남의 논문과 일치하는 경우”다. 여섯 단어란 접속사를 제외한 핵심 키워드를 의미한다. 가령 “나는 학교에 간다”는 문장의 핵심 키워드는 ‘나’, ‘학교’, ‘간다’ 이다. 표절의 기준을 정량화한 또다른 경우는 『서울대 연구윤리 지침』이다. 이에 따르면 “타인의 논문에서 연속적으로 두 문장 이상을 인용표시 없이 동일하게 발췌·사용하는 경우”를 연구 표절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픽: 김태욱 기자 ktw@snu.kr

위 두 지침은 표절의 기준을 정량화한 다소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여섯 단어’ 혹은 ‘두 문장’이 절대적 기준으로서 제시된 것은 아니다. 표절을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외형적으로 얼마나 분량이 일치하느냐가 아니라 독특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연구사실 등 논문의 ‘실질적’ 내용이 적절한 인용이나 허락 없이 사용됐는지의 여부다. 이인재 교수는 “숫자로 표절 기준을 제시한 것은 표절 여부 판정시 방법론적 참고 자료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실제로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표절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의와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전형적인 표절 형태는 출처 표시를 누락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타인이 쓴 단어나 문장 등을 출처 표시 없이 그대로 복사해 사용하거나(그대로 쓰기, Verbatim), 타인의 텍스트에 있는 아이디어나 표현 등을 말만 바꿔 쓰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말 바꿔쓰기 표절, Paraphrasing Plagiarism), 타인의 글을 요약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 연구자 자신이 쓴 문장이나 단락 속에 여러 타인의 글이 뒤섞여 있음에도 정확하게 출처 표시를 하지 않는 경우(모자이크형 표절, Paraphragiarism) 등이 포함된다. 특히 원본에서 직접 보지 않고 2차 저작물에서 가져왔으면서도 원본을 본 것처럼 인용하고 실제로 내용을 가져온 2차 저작물에 대해서는 출처를 표시하지 않는 ‘2차 문헌 표절’은 주의해야 할 형태에 속한다. 외형만 봤을 땐 각주가 모두 달려 있어 표절 여부가 쉽게 가늠되지 않는 상당히 우회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제도는 개선, 그런데 왜?

자기 자신의 논문을 부분적으로 표절하는 ‘자기 표절’ 혹은 중복게재는 국내에서 자주 발견되고 논란이 됐던 표절 형태다. 예를 들어 동일한 학술지에 실린 자신의 논문 3편을 가지고 또다른 논문을 만들고 이를 다시 다른 학술지에 싣는 경우 중복게재로 분류된다. 이는 학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것이라 과거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최근 각 대학의 연구윤리 지침에서는 중복게재의 범위 및 예외 사항 등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표절과 관련한 학계의 제도적 정비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상태다. 실제로 ‘2010년 국내 연구윤리 활동 실태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15여개 대학 중 83.7%가, 470여개 학회 중 96.6%가 연구윤리 관련 규정 및 지침을 제정하고 있다. 이는 2008년 조사결과(218개 대학 중 15.7%, 280개 학회 중 22.5%)에 비해 대폭 상승한 수치다. 또한 표절 및 연구 부정행위 발생시 그 진실성을 검증하고 처리하기 위한 연구윤리위원회 역시 80.4%의 대학과 67.7%의 학회에 설치돼 있다(2010). 2006년에 설치된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표절이 사라지고 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논문 수 늘리기를 통해 실적 쌓기에 급급한 학계와 사회의 풍토가 주요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학술단체협의회 배성인 운영위원장은 “BK사업, 등재지 제도 등을 비롯해 학문적 성과가 양적 잣대에 의해 평가되다 보니 연구자들이 실적을 만들어 내는 데 급급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논문을 쓰기 위해 하나의 논문을 여러개로 쪼개거나 중복게재를 하는 등의 유혹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연구재단(연구재단) 등재지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학의 신임 교원 임용이나 승진 등에 연구재단 등재지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게재했느냐가 주요 평가 기준이 됐다. 이렇듯 논문 수가 임용에 큰 영향을 끼치다보니 임용을 기다리는 신규 박사들은 업적 부풀리기의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등재된 논문 수에 따른 단순한 양적 평가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교과부가 정부 주도 학술지 등재 제도를 2014년부터 폐지한다는 ‘학술지 지원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지만(『대학신문』 3월 12일자) 학벌이 지위 향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은 여전해 표절을 근절하는 것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학위 소지자’에 대한 대중들의 왜곡된 인식과 그에 부합해 ‘학자적 이미지’로 지위 혹은 인지도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각계 유명 인사들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에서 표절 또는 대필 등 연구윤리를 위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인재 교수는 “고위 공직자, 예술계 거장 등이 학위를 소지한다면 이들의 연구가 인용되고 알려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대학의 홍보효과로 이어진다”며 “여기서 대학 혹은 학계와 유명인사 간 ‘담합’이 이뤄져 논문 검증이 허술해지거나 표절이 있어도 봐주는 식의 관행이 생긴다”고 말했다. 제2, 제3의 ‘문대성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연구윤리 의식 고취와 교육 강화가 해결책

일각에서는 제도 정비의 연장선으로 ‘표절 검사 프로그램’이나 강력한 법적 제재를 정부 차원에서 마련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표절 검사 프로그램의 경우, 모든 표절 형태를 기계적으로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대표적인 영어 논문 표절 검사프로그램인 ‘턴잇인(Turn it in)’을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논문 간 유사도를 기준으로 검색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는 실험 데이터가 주를 이루는 이공계 논문에서나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다.

띄어쓰기나 표현 방식 등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는 인문사회계 논문에서는 적용되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프로그램 작업에 필요한 논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도 쉽지 않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논문까지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내 학위논문의 경우 파일형식이 pdf, hwp, 이미지형 pdf 등 대학마다 제각각이라 디지털 작업이 사실상 어려운 상태다. 실제로 지난 2010년 교과부에서 ‘논문 유사도 검색시스템’ 도입을 계획했지만 예산 문제와 적절성 논란으로 백지화된 바 있다. 다만 표절 검사 프로그램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표절 교육용이나 연구자의 자가 진단용으로는 유익하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서울대를 비롯해 KAIST, 연세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이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법적 제재의 경우 현행법상 논문 표절이 형사처벌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 표절과 관련한 법 조항으로는 저작권법 정도가 있다.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공통적으로 “타인의 저작물 또는 아이디어를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자기 것인 양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위”로 묶어서 정의할 수 있는데 문제는 표절은 타인의 ‘아이디어’에, 저작권은 ‘저작물’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가령 저작권 보호 기간(저작권자 사후 70년)이 지난 저작물의 경우 표절이 발생하더라도 저작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설령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논문 표절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할 수 있는 친고죄인 탓에 당사자끼리 합의하면 중도에 사건이 끝나서 실제로 기소가 이뤄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때문에 논문 표절이 발각되면 주로 대학 차원에서 학위 취소, 파면, 해임, 일정 기간 논문 기고 금지와 같은 수준의 징계가 내려지고 있다.

결국 제도적으로는 표절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표절과 관련한 세부적인 지침 제정, 표절 발견 시 강력한 처벌 등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학계 내부의 연구윤리 의식 고취와 이를 위한 각 연구공동체의 윤리 교육 강화가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연세대 연구윤리위원회 이원용 위원장은 “제도 정비는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실질적인 연구윤리 교육이나 연구윤리 규정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상태”라며 “정부 차원에서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고 대학 차원에서도 연구윤리 강좌 등이 개설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언제, 어느 정도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연구윤리 교육의 중요성은 이미 학부생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표절 사태에서 드러난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해피캠퍼스’, ‘레포트월드’ 등의 업체에서 다른 학생들의 레포트를 구입해 표절을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학부생들의 표절행위도 수차례 발각돼 보도된 바 있다(『대학신문』 2007년 5월 5일자). 이원용 위원장은 “표절과 저작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올바른 인용에 대한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는 아직 타인의 지식을 이용하는 데 대한 안이한 도덕관념이 만연해 있다”며 “초·중·고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아이디어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인재 교수는 “연구윤리를 준수하는 것은 결코 연구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연구 성과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며 “오히려 연구 결과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침”이라고 말했다. 정직한 학술적 글쓰기 문화가 자리 잡혀 표절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어질 날이 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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