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VOGUE MOMENT」

대표적인 남자 패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유행이란 참을 수 없이 추해서 6개월마다 바꿔줘야 한다”고 유행의 일회적이고 단기적인 속성을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빠르게 변하는 최신 유행의 급박한 흐름을 줏대없이 좇다보면 어느샌가 심리적 압박감과 과소비의 부담에 사로잡힌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란 데서 나온 우려다. 오는 27일(일)까지 서울대 미술관 MoA에서 열리는 「VOGUE MOMENT」전은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를 활용해 유행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치룰 수밖에 없는 현실 속의 불편한 대가의 일면을 짚어낸다.


작가 한슬은 회화 형식으로 표현된 「보그」의 표지 이미지에 날선 텍스트를 덧붙여 유행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비판한다. 「VOGUE NOVEMBER 2011(2011년 11월호)」(2012)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패러디한 ‘I CONSUME THEREFORE I AM(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구를 큼직하게 배열해 표지 모델을 소비의 화신으로 둔갑시킨다. 그는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잡지의 모델인 만큼 최신 유행을 갈구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자신의 패션을 따르고자 무분별한 소비의 영역에 들어올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표정에는 자부심과 동시에 유행에 발맞추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소비자들을 한없이 깔보는 시선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편 여성들의 미적 욕망을 한껏 자극하며 유행을 주도하는 자들의 본질을 파헤치는 작품도 있다. 작가 후미에 사사부치는 모델들의 세련된 모습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무제」(2009)는 잡지 모델의 사진에 작가가 그림을 덧그린 작품으로 거울에 비친 모델의 얼굴은 해골 형상이고 그의 등은 앙상한 뼈가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손상되고 변형된 모델의 몸은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이상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대중매체에 의해 끊임없이 주입된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유행의 덧없는 본질을 살갗 한 꺼풀만 벗겨내면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육체를 통해 드러내며 유행의 주체 역시 어두운 면모를 지닌 존재임을 밝힌다. 우리가 열렬히 선망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유행의 허망하고 부질없는 단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들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 패션 잡지 「보그」 표지와 속지의 화려한 이미지들을 과감히 비틀고 재단하며 유행이 갖는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관객이 직시하게끔 한다. 작품마다 깃든 작가들의 비판적인 시선을 곱씹노라면 유행은 좇는 자와 선도하는 자 모두에게 덧씌어진 현대 소비사회의 굴레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불편한 세태를 마주보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항시 촉각을 세우고 있는 존재임까지 떠올리게 된다면 ‘참을 수 없는 불편함’으로 마음 한 구석이 더욱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