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재능교육, 현대자동차 등 장기투쟁 사업장들 해결 기미 보이지 않아

5월 1일 노동절은 해마다 찾아온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 노동문제들이 있다. 정리해고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대학신문』은 △정리해고 후 복직을 기다리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노동 3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명해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문제들의 실상을 들여다 봤다.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의 늪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대한문 앞 집회장에는 장례식장과 같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곳곳에는 흰 국화다발과 ‘살아서 노동해방’, ‘자본가가 없는 세상’ 등의 문구가 적힌 흰 풍선이 놓여 있었다.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박힌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천막으로 얼기설기 세운 허름한 분향소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윤형씨의 영정이 분향객을 맞는다. 절을 하고 향을 피우고 나니 삼베옷 차림의 일일상주가 악수를 청한다.

분향소의 일일상주를 맡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3년 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정리해고됐다. 그는 불법파업에 가담한 노조간부라는 이유로 1년 동안 수감된 후 지난해 8월에야 출소했다. 그가 참여했던 파업은 지난 2009년 5월 쌍용자동차 사측이 근로자 2,646명에 대한 일방적 정리해고안을 발표한 것에 노조가 반발해 일어난 것이었다. 그 결과 그해 8월 쌍용자동차 노사는 976명으로 축소된 정리해고안에 합의해 사건을 일단락했다. 이직자와 희망퇴직자를 제외한 정리해고자들에게 1년 후 복직을 약속한다는 조건이었다.

정리해고 이후 갈 곳이 없어진 노동자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자들은 공사장, 대리운전, 택배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회사가 약속한 복직을 기다렸지만 노사합의서에서 약속된 복직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실업자나 마찬가지지만 무급휴직 상태이기 때문에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에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쌍용자동차 출신이라는 이유로 붙여진 ‘폭력과 무능’의 낙인으로 인해 이들을 받아주는 사업장이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2009년부터 작년까지 21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스트레스성 질환과 자살로 숨졌다. 올해 3월 31일 강제 정리해고를 당한 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이윤형씨는 고층건물에서 몸을 던져 스물 두번째 사망자가 됐다.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정리해고로 자살한 동료노동자들을 회상하며 슬픔을 토로했다. 김 수석부지부장은 이윤형씨에 대해 “그동안의 생계적, 가정적 어려움을 모두 술로 달랬고 지난해 12월 통화로 거의 매일 너무나 힘들다는 호소를 했었다”며 “당진의 한 자동차부품업체에 면접을 보러 가니 잘 되면 소주 한잔 꼭 하자는 전화가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김 부지부장이 들은 소식은 취업에 실패한 이윤형씨의 투신자살이었다. 김 수석부지부장은 “죽은 이들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영정 앞에 앉아있기 상당히 힘들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해고 노동자 분향소를 함께 지키고 있는 민주노총 관계자는 “사측은 회생기획안이 강제인가가 된 후 생산량이 10만대 이상 회복됐지만 복직을 약속한 무급휴직 노동자 중 한명도 복직시키지 않았다”며 “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키기 위한 사측과의 협상이 당장 시작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분향소에서 만난 사회진보연대의 한 활동가는 “더이상의 살인을 막기 위해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노동자 아닌 노동자, 특수고용직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은 로터리 옆 대로변이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지나가며 일으키는 먼지바람 속에서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은 4년째 복직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1999년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 노동조합(노조)이 형태를 갖춘 이후 사측은 노조와 관행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해 왔다. 하지만 2007년 재능교육 노조가 임금삭감안에 반발해 파업하자 이듬해 사측은 12명의 학습지 노동자를 해고한 뒤 노조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이에 맞서 2009년 법정에 선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학습지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파업은 불법이고 단체협약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뿐이었다. 이후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해고된 12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노상투쟁을 이어왔다.

노동법상 학습지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이들은 사용자와 실질적으로는 종속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사용자와 평등한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은 조건상으로는 다른 노동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에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가운데 사측은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황창훈 본부장(39)은 대로변에 앉아있던 긴 투쟁기간 동안 사측이 고용한 용역의 폭력을 수없이 견뎌내야 했다. 열려있는 공간이지만 인적이 너무 드물어 폭력을 행사해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황 본부장은 “용역들이 와서 시비를 붙이고 여기에 반응하면 때린다”며 “피켓을 들고 있으면 용역들이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급소를 발로 차는 등 더 심한 폭력을 행사하지만 나뒹굴어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와 바로 코 앞에서 사진을 찍어 약올린 적도 있었다”며 “학습지 노동자들은 여자들이 많은데 괴롭힘을 당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비명을 지르면 그 소리를 녹음해서 벨소리로 지정해 그 벨소리로 또다시 약을 올린다”고 설명했다.

공강 시간마다 학교에서 나와 본사 앞에 앉아 있는 성균관대 노동문제연구회 손기열씨(23)는 “새내기 때부터 학습지 노동자분들을 도와 열악한 환경하에서 농성을 계속해 왔지만 사측은 아직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대책위원회 최재봉씨(45)는 “특수고용직이라는 법적 문제를 정부가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고통”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법적 대응책 마련을 게을리하는 동안 학습지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대로변에서 먼지바람을 견디고 있다.


차별의 또다른 이름, 비정규직

지난 2월 23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하며 복직판결을 내렸다. 이에 지난 2일(수)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현대차의 부당해고가 인정되므로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에 해당되는 임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최병승씨는 2002년부터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다.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을 한참 밑도는 급여를 받았던 최씨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 활동을 했고 2005년 이를 빌미로 해고됐다.

이후 노동자의 권리회복을 위한 최병승씨의 싸움이 시작됐다. 권리를 찾기 위한 8년간의 시간은 절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문제는 해고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최씨는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당연히 가정문제가 생겼고 심지어는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돈도 부담스러워 스스로가 위축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느낌이었다”며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과 중노위의 최종 판결에도 현대차는 중노위의 판결문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씨를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전국 비정규노조 연대회의 정책위원 오민규씨는 “노동자에게 법을 준수하라며 으름장을 놓던 현대차가 정작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사측은 행정소송이나 최씨에 대한 재징계를 통해 최씨의 복직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여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최병승씨로 대표되는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는 울산 공장에 근무하는 1만2천여명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의 이야기다. 비정규직은 작업현장을 비롯한 여러 상황 속에서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다. 오민규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의 70%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생산량 변화에 따른 인원감축으로 인해 항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업무가 고된 기피공정이 주로 비정규직에게 배당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존재한다. 일례로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독감예방접종조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실속 없는 비정규직 대책만을 내놓는 정부, 그리고 법원의 판결조차도 이행하지 않는 사측에 대항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권리쟁취를 위한 싸움을 계속할 예정이다. 최씨는 “비정규직원 7천명 중 조합원은 1천명뿐”이라며 “다른 노동자들도 노조에 가입하도록 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현대차의 정규직·비정규직노조는 합동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비정규직 사용 중단, 비정규직 지회 인정, 대국민 국민사과 등을 핵심으로 하는 ‘비정규직 특별교섭 공동요구안’을 내놓고 교섭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