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에 신촌이 있고 고려대에 안암이 있다면 서울대에는 녹두거리가 있다. 1975년 서울대가 대학로에서 관악으로 이전한 이래, 학생들이 모여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향유할 문화 공간으로서의 대학촌을 향한 필요성이 점차 커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악캠퍼스 인근에 학생들의 주거공간을 비롯한 생활촌이 형성되면서 현재의 ‘녹두’가 정착하게 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시대를 이끌었던 학생운동의 조류는 녹두가 저항과 비판, 담론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도록 했다. 학생들은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녹두에 모여 변화와 혁명을 노래했고 서점과 술집에서 학문과 사회에 대해 토론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녹두에는 더이상 학생들의 문화가 남아있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거리를 꽉 채운 상점들은 대부분이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로 대체됐고, 원룸촌과 고시촌화의 심화는 녹두거리의 정체성을 문화공간이 아닌 유흥공간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학신문』 사진부는 과거의 녹두의 모습을 돌아보며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녹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글·기획: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사진: 『대학신문』 사진부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사진: 『대학신문 사진으로 본 서울대학교 50년』
1980년대의 녹두는 학교와 분리된 생활공간이 아니라, 아크로와 정문과 연계되는 또 하나의 집회공간이었다. 사진은 1988년 녹두에서 자주관악제의 폐막제가 열리는 모습이다. 학생들은 「민주쟁취 그날까지」의 구호를 제창하며 횃불을 들고 녹두거리까지 행진해 경찰과 대치하며 즉석 집회를 벌였다. 이렇듯 학생운동의 문화는 삶의 공간인 녹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사진: '그날에서 책읽기'
녹두는 또 학술적 담론의 공간이기도 했다. 녹두 곳곳에 위치한 ‘그날이 오면’, ‘전야’ 등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당시 정부에 의해 금지된 학술서적들의 은밀한 공급처였을 뿐 아니라 학생들이 함께 모여 사회와 학문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이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선배가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배에게 인문사회과학서점에서 『자본론』 등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선물하는 것이 일종의 의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서점 ‘그날이 오면’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며 각종 학술행사를 주최하고 ‘그날에서 책읽기’라는 이름의 잡지를 매달 발간하며 학생들과 함께 녹두의 학술적 담론을 주도했다.

사진: 『대학신문 사진으로 본 서울대학교 50년』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은 수사기관의 잦은 압수수색과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지탱했던 학생운동 담론의 퇴조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됐다. 대부분의 서점이 문을 닫거나 상업적 서적을 취급하는 일반 서점으로 변화하면서 사회과학 서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 사진은 1995년 1월 인문사회과학 서점 ‘전야’의 폐업 대자보 모습.

사진: 『대학신문 사진으로 본 서울대학교 50년』
학생운동 문화가 그 열기를 차차 잃어감과 동시에, 녹두가 그 문화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운동이 사라진 공간을 1990년대 들어 가속화된 소비문화가 위협하면서 이 빈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학생문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녹두문화제는 1994년 바로 이런 필요 때문에 시작됐다. 녹두문화제 기획자료집에 따르면 녹두문화제는 과잉상업화에 의해 설 자리를 잃은 대학문화가 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결연의 정치’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행사였으며, 녹두라는 공간을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고자 한 첫 시도였다. 그러나 큰 호응 속에 시작된 녹두문화제는 단 2회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진: 『대학신문 사진으로 본 서울대학교 50년』
녹두를 문화적 공간으로 재편하려는 학생들의 자치적 노력은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났다. 학내 규찰과 질서, 치안유지를 위해 1993년 발족된 학생 자원봉사단 ‘관악사랑’은 조직폭력배와 불건전 문화로 녹두거리가 오염되고 있다며 경찰들과 함께 폭력배 단속과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녹두거리를 순찰하는 규찰활동을 시행했다. ‘관악사랑’단장은 이 규찰의 목적을 ‘건전한 대학문화를 회복하고 학우들을 범죄의 위협에서 보호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학생들이 녹두를 학생들의 공간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녹두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자치적인 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사진: 주현희 기자
1990년대 중반부터 녹두에 분 ‘상업화와 프랜차이즈 상점의 바람’은 2012년 현재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녹두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새롭게 들어선 대형 상점과 카페 덕분에 생활이 편리해졌다는 입장이지만, 더이상 대학가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학술담론의 중심지로서의 카페는 녹두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진: 신선혜 기자
과거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앞에 있었던 메모판은 서점에서 열리는 세미나의 일정이나 학생들 간 의견, 심지어는 녹두에서의 술자리 약속 등이 가득히 적혀 있어 녹두거리를 찾는 학생들이 꼭 한번은 걸음을 멈추고 확인하는 정보 공유의 장이자 녹두에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는 작은 공론장이었다. 그러나 현재 녹두의 건물벽과 버스정류장은 고시학원과 원룸 광고전단지만이 빼곡하다. 취업난과 고시공부로 갈 길이 바쁜 학생들에게 녹두는 더 이상 의미있는 문화공간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 주현희 기자
그럼에도 녹두 곳곳에서 이곳의 문화적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은 작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녹두의 주점 ‘작은캠퍼스’는 학생 동아리 공연을 위해 장소를 제공하는 녹두의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일주일에도 몇번씩 학내의 동아리들이 찾아와 손님들을 상대로 음악을 들려준다. 사범대 락밴드 ‘파문’의 이재훈씨(외국어교육계열·10)는 “녹두에 이런 공간이 많이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작은캠퍼스’ 대표 김태윤씨는 “좋아서 시작한 일이 11년 넘게 계속됐다”며 “녹두에 이런 학생들의 문화공간이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사진: '그날이 오면' 홈페이지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려는 녹두의 자생적 움직임은 학술분야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녹두의 마지막 남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인 ‘그날이 오면’에서는 교내 학회인 ‘그날에서 책읽기’와 함께 지금도 학술 세미나와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최근에는 박원순 시장을 초대해 '대학생이 묻고 원순씨가 답하다'라는 이름의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그날이 오면’의 대표 김동운씨는 “과거와는 달리 개인주의적으로 변한 학생문화의 상황이 가슴 아프다”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려하며 다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학술행사의 의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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