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를 넘어 대안을 찾다: 금융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
투기를 넘어 대안을 찾다: 금융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
  • 이문원 기자
  • 승인 2012.05.13 0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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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가 1%를 점령하라!” 지난해 가을, 맨해튼 남단의 작은 공원인 주코티 파크에서는 금융산업의 탐욕성을 비판하는 ‘월가점령시위대(Occupy Wall Street)’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세계 금융중심지에서 돌연 탄생한 이 새로운 시위는 월가의 금융산업이 경제위기 및 양극화의 주 원인임을 강조하며 무분별한 금융세계화에 경종을 울렸다. 이후 세계에는 금융을 통제하고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창출을 요구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대학신문』은 금융의 불안정성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국내•외의 움직임들을 짚어보고, 한국의 금융정책을 진단해 본다.

✽세계화는 무역통상 및 금융은 물론 각국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이르기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는 각국 경제의 통합화 현상을 지칭한다. 특히 최근의 세계화 경향은 금융 및 투자의 자유화를 그 핵심으로 하는데 이를 금융세계화라고 부른다.                       글: 이문원 기자 moonwon@snu.kr

금융의 세계화, 불안정의 세계화


월가시위로 드러난 금융의 탐욕성

지난해 전 세계인의 눈길을 모은 것은 “월가를 점령하라”며 거리로 나온 미국 청년 시위대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줄곧 20%대의 높은 청년실업률과 15.1%의 빈곤율을 유지해 왔다. 이로 인해 높아진 금융산업에 대한 분노는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점거시위로 확산됐다. 금융업의 심장부에서 터져나온 이들의 구호는 현재의 세계금융질서가 가진 적나라한 본성을 전 세계에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특히 문제 삼은 것은 금융업의 팽창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었다. 금융팽창으로 성장한 투기자본이 1% 투자자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인수합병과 구조조정 등으로 지역경제의 건전성을 교란시키고 파생상품으로 거품을 키워 결국 금융위기를 오게 했지만, 정작 양극화와 경제침체의 피해는 금융업과 무관한 하위 99%에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금융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금융위기의 직접적 결과임을 강조하면서 월가 금융계의 과도한 산업 지배가 통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른바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 Act)’의 재도입을 통해 투기적 금융을 억압하고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금융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1%를 향한 99%의 분노’라는 이들의 외침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며 400여 도시로 확산됐고, 한국에서도 이를 본 딴 ‘여의도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KRX한국거래소 앞을 점거하기도 했다. ‘여의도를 점령하라’에 참가했던 신혜진씨(26)는 “금융업의 탐욕성은 전 세계에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며 “한국의 현실도 미국처럼 심각하다고 생각해 여의도에서 점령운동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월가의 점거시위는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면서 73일 만에 막을 내렸지만, 이들은 이후로도 미국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1일 노동절에는 월가 곳곳에서 거리행진이 벌어져 월가 시위대의 부활을 알렸고, 11월에 예정된 미 대선 일정을 따라 다시 한번 시위에 나서 금융통제를 요구하겠다고 예고하고 있어 운동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세계화의 도래와 위기

현재와 같은 금융업의 팽창은 대처와 레이건 정부가 정책기조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전환하고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본격화됐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론자들은 세계시장의 통합이 경제성장과 부의 증진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며 각국의 완전한 시장개방을 목표로 일련의 금융•무역기구를 설치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 금융•무역기구들은 각국에 투자 자유화를 압박하며 전 세계 금융시장의 통합을 추진해 왔다. 한국의 경우에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로부터 긴급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자본시장 개방과 금융업 구조조정을 수용함에 따라 다국적자본의 국내투자가 본격적으로 허용됐다. 이후 양자간투자협정(BIT), 자유무역협정(FTA) 등도 세계적 차원의 금융시장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최근 한•미FTA와 관련해 논란이 됐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국가의 정책자율성마저 제한해 금융세계화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금융세계화 이후 보편화된 투자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에 의한 기업사냥은 구조조정 및 대량해고를 유발해 전 세계적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비판을 받았다. 투기자본이 시세차익의 극대화만을 목표로 기업의 인수와 매각을 일삼으면서 금융이 산업발전을 추동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제의 교란과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 각국의 금융투자 규제완화 추세가 자산가격의 거품 증대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 확대를 가져와 금융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는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타고 전 세계로 파급됐고, 이후 새로운 금융질서에 대한 요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새로운 금융질서를 향한 상상력


단기투기 억제하는 토빈세

금융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대안은 국제금융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기업사냥을 위한 단기적 투기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이어져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막고 금융의 본래 목적인 장기적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단기적 투기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제약을 가하자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국제시민단체 ‘금융거래과세를 위한 시민연합(ATTAC)’, 영국의 국제적 빈민구호 단체 ‘빈곤과의 투쟁(War on Want)’ 등은 이른바 ‘토빈세(Tobin Tax)’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토빈세는 단기자금이 국경을 넘을 때 0.5% 가량의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이 환율안정을 도모하려는 취지로 1978년에 주장한 개념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투기자본이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국제 투기자본을 규제하기 위한 제도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토빈세는 과세를 통해 거둬들인 돈을 극빈국 개발 원조를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면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핵심적 요구 중 하나로 부상했다.

한국에서도 국제구호NGO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토빈세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구촌나눔운동 강문규 이사장은 “토빈세는 국제 투기자본이 국경을 넘나들 때 발생하는 수익을 개도국 개발지원에 충당하자는 것”이라며 “개도국 개발지원을 위해 매일 2조 달러를 넘는 자금의 이동에 대해서 과세한다는 것은 매우 뜻 깊고 동시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국제금융 거버넌스를 요구하는 움직임

‘시장의 자기규제’ 대신 국제사회에 의한 공공경영으로 금융을 규제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네덜란드 초민족연구소(TNI), 포커스온더글로벌사우스(Focus on the Global South) 등은 UN의 지원하에 새로운 금융체계를 구축할 것을 주장한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결합에 대한 모니터링 권한을 선진국 위주의 IMF로부터 1국 1표 원칙의 UN으로 이양하면 주변부 국가의 의견을 보다 많이 반영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나아가 UN의 새로운 모니터링 기구에 소비자, 노동조합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도 참여하도록 해 지역사회 속에서 지속가능한 금융관리를 추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이들은 무디스, 피치, S&P 등 사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신용등급 판정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주는 신용평가가 소수의 영리업체에 맡겨진 상황에서 잘못된 신용등급평가로 금융위기가 증폭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용등급판정을 공공감독의 일부로 전환하고, 신용등급평가에는 금융상품이나 대부와 함께 금융기업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포함해 사회적 관점에서 금융을 규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제도를 개혁하라

한국에서도 여러 방면에서 금융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분출되고 있다. 금융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국내에 진출한 투기성 자본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입법을 통해 이를 통제하려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마힌드라 그룹의 쌍용차 인수 등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명분으로 사회적 공익을 저해한 사례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면서 특별법 제정, 공적자금 투입 등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투기자본의 활동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한국의 금융환경을 민주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처장은 “금융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금융위원회가 금융관료로 채워져 있어 사실상 국민의 통제 바깥에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처럼 국회에서 각 정당이 위원들을 임명하고, 소비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도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 금융감독기구를 신설하라는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원회와 함께 금융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인사들로 채워져 ‘금피아’라 비판받을 정도로 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금융전문가들이 금융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있는 업계 내부 인사라 공정한 평가에 한계가 있는 만큼, 그간 금융공공성 운동을 펼쳐 온 외부 시민•사회 전문가로 독립적 감독기구를 꾸려 금융관료를 감시하고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금융소비자협회 백성진 사무국장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 인권운동을 일정 기간 전개해 온 전문가가 정부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며 “이처럼 금융업 전반을 감시하고 금융으로 인한 또다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및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할까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 재정위기와 경기침체로 4년 넘게 이어지면서 주요국의 정책 입안가들 사이에서도 금융규제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세계화와 시장개방을 주도해 온 세계경제포럼에서 올해의 주제를 ‘거대한 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으로 설정하고 한계에 부닥친 신자유주의 모델의 전환 필요성을 논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규제에 대한 금융계의 반발이 거세고 국제적 합의도 요원해 새로운 금융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월가에 대한 규제 시도는 거대 금융기관의 치열한 로비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미 2010년 7월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400개 법안을 담아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개혁법안이라고 불리우는 도드-프랭크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 법안은 현대판 글래스-스티걸법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금융계의 로비와 공화당의 반대로 하부 규정 마련이 늦어지면서 실제로는 은행 예금보험금 상향 조정 등 부수적인 내용만이 시행됐다. 도드-프랭크법에 포함된 핵심 규제법안 중 하나인 ‘볼커 룰(Volcker rule)’ 역시 지난달 19일 금융당국이 향후 2년간 유예를 발표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어 오바마 정부는 초고소득자에 대한 금융소득 증세를 취지로 한 ‘버핏세(Buffett rule)’ 도입도 추진했으나 지난달 17일 상원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최종 부결됐다.

국적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금융자본의 특성상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대안적 금융시스템의 창출을 위해 넘어야 할 과제다.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프랑스와 독일의 주도로 토빈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영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 논의 진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도 토빈세 도입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프랑스는 연내에 단독으로라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일국적 차원에서 결실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금융체제의 특성상 먼저 도입한 국가가 자본이탈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웨덴은 1980년대에 토빈세를 단독으로 도입했지만 금융거래량 자체가 급감해 폐지한 바 있다.

빈곤율: 전체 가구 중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벌어들인 가구의 비율.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 Act):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엄격하게 분리해 상업은행들이 위험도가 높은 증권에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법으로 대공황 직후인 1933년에 도입됐다가 1999년에 폐지됨.
볼커 룰(Volcker rule): 금융기관 시스템의 부실을 방지하기 위한 감독강화 방안 중 하나로, 그 골자는 은행이 자사의 자산이나 차입금으로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
버핏세(Buffett rule):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이 주장한 부유층에 대한 세금 증세 방안. 금융소득의 낮은 세율로 인해 연간소득 10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들이 일반 미국 시민보다도 낮은 세율로 소득세를 내는 현상을 막기 위해 부유층의 금융소득에 적용되는 실효세율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이 되도록 세율 하한선을 정하자는 것을 골자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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