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완화로 역주행하는 한국
금융규제 완화로 역주행하는 한국
  • 이문원 기자
  • 승인 2012.05.13 0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의 주요국들이 금융규제 방안을 잇달아 추진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금융당국은 거꾸로 달리고 있다. 월가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조차 각종 규제 강화를 통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오히려 국제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월가식 금융기법을 도입해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7년 금융시장의 각종 규제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자본시장법이 처음 공포된 데 이어 4년 만에 입법예고된 이번 개정안은 월가의 투자은행들을 모델로 한국형 헤지펀드를 육성하는 게 골자다. 해당 법안은 18대 국회에서는 통과가 사실상 무산돼 금융위원회는 이를 19대 국회에서 재입법하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어느 정도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식 금융모델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원희 교수(국민대 경제학과)는 “미국 모델을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것이 현 금융당국의 현실”이라며 “위기를 초래한 시스템을 수입할 것이 아니라 투기세력의 활동을 막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현재의 세계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지목된다. 금산분리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원칙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금융규제 방안으로 여겨져 각종 법안으로 유지돼 왔다. 그런데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금융을 사금화하고 산업-금융 간 부실 연계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재벌에게 은행 소유를 열어주는 특혜 법안이라는 의혹이 일면서 18대 국회 통과는 무산됐지만, 19대 국회에서 추진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금융공공성 확보를 위한 관리•감독 강화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우리나라 금융당국의 감독 기능은 유명무실화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시민단체들은 현재의 금융감독원이 정부의 금융정책에 종속돼 공공성을 상실했다며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독립적 견제기구로 신설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추진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국무회의 통과 과정에서 당초안보다 크게 후퇴돼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금융감독원 산하에 설치되고 예산승인권을 금융위원장이 갖는 등 사실상 기존 금융당국에 종속된 형태로 변질된 상태다.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처장은 “론스타같은 명백한 투기자본의 횡포를 감독해야할 금융감독원이 사실상 투기를 돕는 배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금융규제를 위한 대책이 표류하고 정부가 감독기능을 소홀히 하는 사이 수만명의 금융피해자가 발생하고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며 금융공공성 확보를 촉구했다.

이처럼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금융정책이 계속해서 추진되는 이유로는 학계와 경제관료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경도돼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참여연대 이헌욱 민생희망본부장은 “금융정책을 만드는 관료들이 대부분 금융업계 입장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라며 “금융정책이나 감독당국은 물론이고 학계와 언론, 심지어는 소비자들까지도 금융업계의 논리에 깊숙히 포섭돼 있어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