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학부 석사과정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복지국가를 약속하는 요즈음, 또 한명의 젊음이 세상을 떠났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6년간 일하다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은지 2년만의 일, 이윤정씨(33)는 두 자녀를 남긴 채 지난 7일 숨을 거두었다. 이로써 55명, 삼성에 젊음을 바치다 직업병을 얻어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다.

문득 작년 봄의 한 교내 강연이 떠올랐다. 우리 헌법에 관한 강연이 끝난 후 나는 여쭈었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3권이 엄연히 헌법에 보장돼 있음에도 불구, 무노조경영을 자랑스레 내세우며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헌법 학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선생님은 답하셨다. “음… 예 뭐 그 부분을 규율하는 건 행정법이니까요. 허허 글쎄요. 전 헌법을 전공한지라 그 정도까지만 답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허허 답변이 좀 됐나요?” 고백컨대 물론 답변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실망은 기대에서 오는 법,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실망감 또한 없었다. 단지 익숙한 씁쓸함 내지는 공허함과 다시금 불쾌하게 조우했을 뿐. 그렇다면 그 감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나? 나는 정신분열증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목한다. 무슨 소리인가?

여기, 이윤정씨의 죽음을 접하고 중도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게 된 S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 이건희와 삼성, 나아가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눈뜨며 변화가 필요하단 인식에 이르게 된 S, “오늘 하루 학생 여러분이 얻은 지식이 사회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란 방송을 들으며 책장을 덮는다. 직전까지 삼성을 고민하던 S는 중도를 나서며 갤럭시폰으로 삼성에 취업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를 건넨다. 집에 도착한 S는 파브TV로 야구중계를 보며 외친다. “최강삼성!” 라이온즈의 승리를 확인한 S, 갤럭시탭으로 여자친구에게 카톡을 날린다. “내일 CGV에서 영화보고, 신세계백화점 가지 않을래?” 요컨대 문제는 우리가 완전히 포위당했단 것이다. 자본은 공기와 같다. 분명 존재하지만 직접 볼 순 없다. 공기는 들숨과 날숨을 통해 우리의 내·외부를 넘나들며 촘촘하게 모두를 감싸고 있다. 일순간 삼성을 비판할 순 있지만, 이내 삼성에 포위당했음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마도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쓰라린 자화상 아닐까?

‘무노조경영’과 ‘3대 세습’을 자행해온 삼성을 지탱하는 힘은 물론 막대한 경제력이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구호에만 그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그러나 동시에,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생각이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돼 사회 저변을 잠식하고 있는 한, 안철수 교수가 아닌 그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경제민주화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주권자인 시민들이 ‘삼성왕국’에 대해 긴박히 성찰해야만 하는 이유다.

5월 8일 어버이날, 이윤정씨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그녀의 빈소엔 카네이션 대신 국화꽃이 수북이 쌓였다. 생전의 이윤정씨는 “삼성이 너무 밉다”는 남편에게 “모든 걸 용서해주자”고 말했다. 딸의 육신을 화장하며 부친 이안우씨는 “내가 죄인이지…”란 말만을 반복했다. 한편, 삼성은 향후 이윤정씨에 대한 보상계획이 전무함을 분명히 밝혔다. 과연 ‘또 하나의 가족’은 지독히도 향기로웠다. 그리하여 문제는 언제나 다시금 실천론과 방법론.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다시, 삼성을 생각해 볼 것을 간곡히 권하는 바, 고개 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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