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타자들간의 새로운 만남을 상상하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페미니스트 실천

 

사진: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지난 11일(금) 교수학습개발센터(61동)에서 한국여성학회 학술포럼 「‘타자들’ 간의 새로운 만남을 상상하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페미니스트 실천」이 열렸다. 이날 포럼은 최근 한국 사회의 이슈로 떠오른 다문화주의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와 연관된 사회적 이슈들의 해결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용어가 ‘가족’과 결합해 결혼 이주여성에 주로 주목하게 됐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이 다문화 담론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1부 학술발표는 한국 사회의 다문화 담론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이민경 교수(대구대 교육학과, 「다문화 담론과 용어에 대한 여성주의적 고찰-정책담론과 용어를 중심으로」), 김민정 교수(강원대 문화인류학과, 「아시아 여성이주 돌아보기: ‘불법’체류와 연예(성)노동, 국적취득의 문제」), 이주여성인권포럼 김정선 사무국장(「한국식 다문화와 결혼이주여성 시민권에 대한 비판적 고찰」) 모두 이주자들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는 현행 법률과 사회적 시각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민경 교수는 현재 형성돼 있는 다문화 담론을 크게 △가부장적 프레임 △복지와 신자유주의 담론의 결합 △이주자와 내국인을 구별 짓는 정책 용어 등으로 범주화했다. 그는 현재의 다문화 담론이 이주자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와 평등주의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현재의 다문화 담론이 지나치게 협소한 의미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당시 보건복지가족부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을 통해 다문화 정책이 “농촌지역 출산율을 증가시켜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억제기제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가족 재생산과 양육, 가족 유지 등 가부장제 하 한국 여성들에게 지웠던 의무를 결혼 이주여성에게도 부여해 그들이 ‘한국인 가족 유지’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이 교수는 이주자들이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킬 글로벌 인재로 인식되게 된 계기를 신자유주의 담론과 연결시켰다.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국내 외국인 수가 급증했던 초기에는 이주자들을 온정주의적 시각에서 시혜의 대상으로 낙인찍었다. 이처럼 이주자들을 시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비판이 일자 그들을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자원으로 인식하자는 담론이 등장했다. 이주자들을 다양한 문화적 자본을 바탕으로 한국의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킬 글로벌 인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이주자의 문제가 ‘국제 경쟁력’, ‘세계화’ 등의 개념과 결부돼 다문화 담론은 신자유주의적 담론과 연결됐다. 이 교수는 이주자를 ‘사회적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능력 있는 이주자들을 집중 지원하면서 이주자들 간 양극화를 불러오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다문화 담론이라는 거시적 주제를 다뤘다면 김민정 교수는 필리핀 여성들의 구체적인 이주 사례를 범주화해 미시적으로 접근했다. 김 교수는 필리핀 이주 여성들이 겪는 법적 절차 문제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3D 업종에 종사하는 이주 여성들은 관광비자로 입국해 외국인 등록 절차를 밟지 않는 미등록 체류를 결심한다. 대한민국에 90일을 초과해 체류하는 외국인은 외국인 등록 후 등록증을 발급받도록 규정돼 있어 이들의 행위는 불법이다. 이들이 단속과 강제 추방의 위험을 안고도 미등록 체류를 결심하는 이유는 체류 기간을 연장해 더 오래 머물면서 작업장을 옮기는 데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예술흥행 비자를 소지하고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기지촌 클럽이나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 등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다. 예술흥행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은 최장 2년간 체류할 수 있고 비자는 연장할 수도 있어 이들은 대부분 합법적인 체류 상태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적은 수입을 얻고, 수수료를 떼 가는 에이전시를 통해 간접 고용되기 때문에 계약 연장을 위해서는 에이전시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민을 허용하는 거의 유일한 법적 장치는 바로 결혼이다. 그래서 많은 이주 여성들이 결혼 이주로 한국에 들어오는 실정이다. 한국에 들어온 그들 중 대부분은 농어촌 가족에 편입돼 가사 노동과 육아, 간병 등을 담당한다. 김 교수는 “결혼 이주자들은 부부관계가 ‘도구적’인 결합에 지나지 않고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적인 가정 분위기 속에서 차별을 마주하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페미니즘의 시각과 다문화주의 담론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1부 마지막으로 무대에 선 김정선 사무국장은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법적 지위와 권리인 ‘시민권’의 측면에서 다문화 담론을 살펴봤다. 김 사무국장은 “결혼 이주여성들의 시민권은 가족·임신·출산·양육의 재생산 논리에 갇혔다”고 지적했다. 현행 국적법상 결혼 이주여성들은 혼인 후 2년이 지나야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때까지는 결혼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배우자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 배우자 비자를 연장하려면 남편의 동행 및 신원보증이 필요한 현실에 대해 그는 “이주 여성들은 남편의 선택에 따라 국적 취득의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 배우자에게 ‘부착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또 이주 여성들은 한국인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을 때에만 의료 급여, 사회보험 등에 가입할 수 있는 ‘사회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나 ‘의료급여법’에서는 수급자격을 ‘한국인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이주자 어머니’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는 이러한 제도상의 차별을 바로잡는 대신 단순히 지원액만을 늘려 다문화 가족에 찍힌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있다”고 논의를 마무리 했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1부의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이론·실천·정책적 관점으로 나눠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뤄졌다. 국제이주기구(IOM) 이민정책연구원 정기선 연구교육실장은 “다문화 정책은 ‘외국인 정책’이 아닌 출입국 관리와 체류자격·기간 관리 등과 함께 ‘이민정책’으로 다뤄져야 한다”며 현재의 다문화 정책이 분절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여러 법안들은 통칭 ‘외국인 정책’으로 불리는데 이주자들의 출입국 관리, 체류, 정착과 지원에 관한 문제는 하나의 법체계에서 다뤄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문제의식이다. 한국의 이주민 정책이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고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까지 포괄해야 하며 타국으로부터의 이주(immigration)와 타국으로의 이주(emigration) 모두를 아우르는 ‘이주(migration) 정책’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여성학회는 초대의 말에서 “여성학적 접근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문화적 상황과 다문화주의에 이론적·실천적·정책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층위를 검토하고자 했다”고 이번 포럼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학술포럼을 통해 논의된 내용이 이주민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환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타자’가 아닌 ‘우리’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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