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지음ㅣ천년의 상상ㅣ416쪽ㅣ2만3천원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탄압의 시대에 오뚝이처럼 일어나 자신만의 시를 완성시키고자 했던 김수영의 시 「풀」의 일부다.
공대를 졸업했으나 철학에 매력을 느껴 철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인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저자 강신주는 『김수영을 위하여』에서 김수영의 거의 모든 시를 전하며 그 속에 깃든 김수영의 정신을 철학적으로 재조명한다. 책은 크게 ‘시인을 위하여’, ‘사람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의 3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장은 주제에 맞는 김수영의 시들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해석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책에서 김수영을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라 말하며 그의 투철한 ‘인문정신’을 예찬한다. ‘온몸으로 시를 쓰는 것’에 비유되는 ‘인문정신’은 책 속에서 시대의 요구를 뿌리치고 매명(賣名)의 굴레를 벗어나 온전히 자기만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자유정신으로 소개된다.

1950년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징집된 김수영은 탈출을 감행했다. 남쪽에 있는 부인과 아이에게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김수영은 자신을 뒤따라온 북한군에게 자신이 UN군을 피해 도망가던 인민군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결국 간신히 돌아온 서울에서 인민군첩자로 낙인찍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 김수영은 포로들을 보며 개개인이 어떻게 이념과 사상에 유린당하고 종속되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이를 계기로 김수영은 무리 속의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단독적인 개인이 되기 위한 자유정신을 시를 통해 부르짖었다.

저자 강신주는 대학원 시절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은 글을 쓰고자 할 때 김수영의 자유정신이 버팀목이 돼주었다고 말한다. 이제 그는 그의 버팀목을 우리에게도 빌려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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