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의해 강요된 ‘현모양처’

▲ © 삽화: 강동환 기자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최초로 10%를 넘어 여성 정치가 및 여성 운동가들의 표정이 밝다. 이에 지난 11일(화) ‘숙명여대아시아여성연구소’는 「해방, 분단, 산업화 그리고 여성」을 주제로 해방 이후 여성의 현대사를 조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유숙란 선임연구원(숙명여대ㆍ아시아여성연구소)은 「국민총화 속의 여성의 정치 참여」에서 “박정희 정권이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의원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력한 의회였지만 정권에 도전하지 않는 수준의 정책 논의는 가능했기 때문에 여성 의원들이 여성에게 피임을 강요하는 가족계획과 윤락 여성 인권 문제 등을 비판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3, 4공화국 당시 국민총화의 강조로 여성 문제가 인식될 여지가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당시 여성의원들은 1980년대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며 군사 정권 시기에도 여권 신장 노력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송은희씨(국가안보정책연구소)는 “여성의 정치참여 이해를 위해 국가의 속성 외에도 당시의 성 차별적 문화와,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임명하는 비민주적 선거 제도 등도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사정권 시대의 여성의원 1980년대 여성운동의 기틀 마련”

 

 

 

정치와 달리 사회 영역에서는 오히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여성의 소외가 심화됐다. 「농촌의 자본주의 편입과 여성 농민의 노동자화 과정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김은실 선임연구원(숙명여대ㆍ아시아여성연구소)은 “여성 농민의 문제는 정부의 농촌 근대화 시도의 실패및 농촌의 소외와 관련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가 농촌 근대화,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여성에게 노동을 가중시켰으며 가부장제적 국가주의를 보급해 여성 농민의 정체성 확립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옥란 교수(숙명여대ㆍ경제학부)는 “농촌 여성 노동자를 희생자로 보기보다는 성장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강조하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모양처’는 양성평등을 강조하는 현재에도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변신원 선임연구원(숙명여대ㆍ아시아여성연구소)은 「산업화 시기 여성의 역할: 현모양처의 삶을 중심으로」에서 “해방 후 한국 사회는 경제 자립, 국가 안보를 강조하면서 국가의 가부장성을 강화했고 여성은 공적영역에서 밀려나 사적영역에서 국가의 지도 이념에 의해 관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가족화로 인해 노동 강도가 감소한 도시 중산층 전업주부의 일탈 통제를 위해 사랑과 현모양처 이데올로기가 도입됐다”며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대중적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대중문화를 동원했다”고 말했다.

 

 

 

같은 시대의 여성이라도 계급에 따라 생활은 상이해

 

 

 

마지막으로 박선애 연구원(숙명여대ㆍ인문학부)은 「구술로 풀어가는 한국여성사」에서 해방 이후 사회적 구조를 근거로 계층별, 직업별로 세분화해 여성 빨치산, 기지촌 여성, 새마을 운동 부녀 지도자, 여의사, 여군 경험자 등을 대상으로 구술 작업을 시도했다. 그는 여의사 박양실과 여성빨치산 정순덕의 생애 비교를 통해 “당시에는 남성중심적 가족 제도로 인한 여성의 성적 차별과 소외가 대부분이지만 계급적 차이에 따라 매우 다른 삶을 살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 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한국 여성 근ㆍ현대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준비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가족에서 정치참여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난 한국 여성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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