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사실혼·단순동거 등 전형적 가족형태 탈피한 가구 증가… 의료보험 및 주거 지원 누락 등 제도가 다변화된 가족 세태 반영 못해

가족의 형태와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정형화된 가족 형태에서 벗어난 비혼·단순동거 및 사실혼 가구들은 2010년 기준 12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의료보험·주거지원 등 각종 사회제도는 가족 형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며 이들을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비혼(非婚) 가구(결혼할 의사가 없는 1세대의 단독 세대주)는 각종 세금공제제도에서 적지 않은 차별을 받는다. 결혼한 여성들에게 50만원을 공제해 주는 부녀자공제, 결혼한 배우자가 있을 경우 150만원을 공제해주는 배우자공제는 혼인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1~2인 가구에게 50만원씩 공제하던 소수자공제는 아예 폐지된 지 오래이다.

사실혼, 동성애 부부 등 혼인관계가 아닌 가족들의 경우 배우자가 위급한 의료상황에 처해 있다 해도 입원, 수술 여부의 동의, 사망확인권 등의 결정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 현행 법은 의료결정권을 혼인 관계에 있는 배우자나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에게만 한정짓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배우자로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의 직장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국민연금을 승계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같은 비표준 가구들은 정부의 주거 지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차별을 받는다. 이 가족들이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자 해도 ‘만 20세 이상의 부양가족이 있는 세대주’라는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대출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장기임대주택의 혜택에서 제외된다. 공공주택의 새로운 형태인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으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적법한 혼인신고를 거친 가족만 응모할 수 있다는 기준 때문에 청약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다자녀 가구, 3세대 가구 등 대가족에 우선권을 주는 임대주택, 장기전세주택 등의 분양권 우선순위에서도 비표준 가구들의 자리는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정책센터 김영란 연구위원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은 비정상이라는 고정적인 가족개념이 정부 정책에 산발적으로 섞여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과 법적 제도들의 충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며 “다양한 소수자들의 가족 구성 권리를 존중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실제 비표준 가족들이 혼인 관계라는 제도로부터 벗어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비혼·사실혼 부부들은 스스로의 신념이나 상황에 따라 결혼 제도를 거부한 경우이며 동성애 부부는 혼인이 판례상 금지돼 온 경우다. 그러나 다변화되는 가족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개념의 프레임에 머물러 이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제도들은 자연스레 이들에게 결혼 제도로의 편입을 강요하고 있다.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 정현희 운영위원은 “비혼자의 경우 비혼 자체가 임시적인 상태로 인식되기 때문에 비혼자의 요구는 한 사회적 구성원의 요구로서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며 “비혼자뿐 아니라 결혼이나 혈연관계 외의 다른 관계들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가족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비표준 가구들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독일에서 200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생활동반자관계법(Eingetragene Lebenspartnerschaft)’이다. 이 법은 동성애부부도 동반자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등록해 가족법상의 지위를 부여하고 혼인관계가 인정하는 각종 법적 효력을 인정한다. 이에 따르면 동성애자도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상속권, 주거 혜택과 소득공제, 보험혜택 등이 부여된다. 프랑스에서도 같은 내용의 ‘시민연대협약(PACS)’법안을 1999년부터 시행해 왔으며 국내에서는 통합진보당이 이같은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지난 3월 발표한 바 있다.

언니네트워크 정현희 운영위원은 “생활동반자관계법과 같은 등록 파트너십 제도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비혼자, 사실혼 부부 등 결혼을 택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변화된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며 “결혼에 너무 강력한 의미가 부여돼 있는 한국사회에 꼭 도입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 사무국장은 “다변화된 가족세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구들이 어떤 것을 불편해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사례 조사와 연구가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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