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대학원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물론 이때의 환경이 물적 환경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일상을 지배하는 모든 제도나 체계는 물론 개인적인 만남이나 관계망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중 물적 환경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도 우리가 매일 접하고 부대끼는 일상 환경, 특히 서울대인들이 매일 살아가고 있는 관악캠퍼스 환경을 함께 생각해 보려 한다.

필자는 환경과 인간 사이의 관계방정식으로 세 가지 관점을 들고 싶다. 그 첫째는 심리적 차원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대학원생 5명 중 1명 정도가 우울증이라 한다. 현대인에게 스트레스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문제는 그걸 얼마나 잘 해소하느냐다. 여러 방안 중에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환경, 마음에 와 닿는 장소가 주는 효용을 강조하고 싶다. 환경이 인간의 심리, 나아가 병리에 얼마나 효험이 큰지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치유정원(healing garden)이나 치유숲이 잘 말해주고 있다. 달리 말하면 곧 나쁜 환경이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음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으니 이는 건강과 생명의 문제기도 하다.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 도시나 대학 캠퍼스 환경에 어찌 무심할 수가 있을까?

두번째는 감성 차원이다. 최근 각광받는 감성 공학, 감성 마케팅은 인간 감성에 주목한다. 정서적 유대감 강화를 통해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다. 감성은 환경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마음 붙일만한 장소, 분위기 있는 공간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준다. 특히 인터넷, 핸드폰, 텔레비전이 우리의 감각과 감성을 지배하는 지금, 살아있는 환경이 갖는 의미는 크다. 기계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귓불을 스치는 미풍, 코끝을 자극하는 꽃향기, 발바닥에 닿는 흙의 촉감과 따스한 햇살을 대체할 수가 있을까? 이것이 바로 첨단 기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품 자연’이 지닌 가치이고 생명체 인간에게 자연이 중요한 이유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성세대라고 불리기도 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학교환경은 과연 얼마나 감성적으로 호응되는가? 우리 삶과 인간관계가 메말라지고 거칠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생각, 곧 사유에 관한 문제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라는 루소의 말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임으로써 활력과 사고의 깊이를 더한다. 특히 인공이 지배하는 회색 도시에서 건강한 자연과의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인류 역사상 빼어난 예술이나 철학은 모두 그런 자연과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로에게서 월든 호수와 숲이, 모네에게서 지베르니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리고 주자에게 무이구곡이 없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퇴계 이황이 도산구곡을, 율곡 이이가 고산구곡을, 그 외에도 조선의 수많은 유자들이 산수를 찾아 구곡을 경영하며 삶과 학문을 논하였던 것도 다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관악캠퍼스로 돌아와 물적 환경을 보면 메슬로우의 인간욕구 5단계에서 겨우 2단계, 즉 생리와 안전 욕구 충족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생존 환경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증진시키고 자아실현을 구현하기까지는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보다 창의적인 학문과 감성적인 문화예술은 우리의 일상 환경이 치유와 회복, 만남과 정서 함양, 그리고 사색과 명상의 산실로 그 효용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적 대학, 선진 학문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면 열악한 일상 환경 속에서 그 꿈꾸기가 과연 얼마나 가능한 일일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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