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모든 잉여가치와 이윤의 원천이라는 (잉여)가치론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다른 경제학 이론과 구분시켜주는 근본적인 차이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자본론』이 처음 출간됐을 때부터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신고전학파를 비롯한 주류 경제학자들이 제기한 흔한 비판은 노동뿐 아니라 자본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산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제가 바로 자본으로 마련한 기계임을 상기한다면 이는 타당한 의구심으로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기계를 사용하는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하기 마련이고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노동자가 똑같은 일을 하는 기계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고전학파는 노동뿐 아니라 자본도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들을 생산하는 데 관여한다고 주장했다.

 헉명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활동가인 크리스 하먼은 이런 주장에 결정적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신고전학파의 비판은 기본적으로 정태적(靜態的) 경제관에서 비롯됐다. 정태적 경제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그냥 공존할 뿐이다. 생산수단과 원료 자체도 생산된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이 무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생산수단은 과거에 이뤄진 노동의 산물이다.

 주류 경제학의 비판에 대한 마르크스 경제학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보기엔 신고전학파의 가치론(한계효용론)은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활발히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비현실적 경제 이론이라는 것이다.

 한계효용학파라고도 불리는 신고전학파는 상품이 제공하는 ‘효용’이라는 측면에서 가치론을 정립했다. 이에 따르면 소비자의 특정한 선호 체계에 바탕을 둔 특정한 수요가 현재의 기술 조건과 현재의 토지, 노동, 자본에 바탕을 둔 공급과 만났을 때 가격이 형성된다. 현실에선 분명 끊임없이 자본이 축적되고 생산기술이 발전하기에 생산에 투입되는 기존 생산물의 수요·공급 패턴이 바뀐다. 그런데 신고전학파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오직 ‘현재’의 상태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신고전학파의 논리는 현존 경제체제가 가능한 최상의 세계이며 ‘최적의’ 생산 조건을 제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소자원을 경쟁적 부문들 사이에 배분할 수 있는 법칙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호황과 불황이 발생하는 경기순환에 대해서 체계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시장의 안정적 균형을 강조하는 한계효용 이론의 주장과 달리 경기순환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항상 균형을 유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신고전학파의 변호는 경제 위기가 기본적으로 건강한 체제를 일시적으로 왜곡시키는 외부적 요소 때문에 벌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19세기 신고전학파 창시자 중 한명인 제번스는 무역풍을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는 태양의 흑점 때문에 경기순환이 발생한다고 썼으며 발라는 가격이 수요·공급과 맞지 않아서 경제 위기라는 혼란이 일어난다고 봤다. 그들은 경제 위기를 일시적 일탈로 여기고 효율적인 경제의 작동 방식을 규정하는 불가항력적 법칙 체계에 대한 신념을 고수했다. 크리스 하먼은 “신고전학파는 자본주의가 끊임없는 변화를 겪는 체제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거부하기 때문에 기껏해야 현재 상태를 옹호하며 묘사할 뿐 경제의 발전과 그 동역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물론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중에도 자신들의 이론에 맹점이 있음을 깨달은 이들이 있었고 가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의 요소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론을 보강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체계의 기본 전제까지 건드리지는 않는 수준에서 이뤄졌다. 대표적인 한계효용 이론가인 마셜은 “화폐의 진정한 가치는 어떤 점에서는 상품보다는 노동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낫다”며 노동가치론의 유용성을 암시했지만 이내 “이런 어려움은 이 책에서 우리의 논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셜의 제자이기도 했던 케인스도 신고전학파 체계의 가정들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지만 결코 체계 자체를 포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반면 마르크스는 상품에 대한 개인적 평가인 ‘효용’을 이론의 기초로 삼지 않고 특정 시점에 체제 전체에 존재하는 기술 수준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을 가치론의 기초로 삼는다. 이로써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주관적이고 정태적인 관점을 피할 수 있다. 효용을 가치 척도로 삼는 신고전학파의 이론으로는 한 사람이 얻는 효용과 다른 사람이 얻는 효용을 측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사막을 헤매는 사람이 물 한잔에서 얻는 ‘효용’과 공주가 다이아몬드 왕관에서 얻는 ‘효용’을 어떻게 비교·평가할 것인가? 여기서 신고전학파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개인들의 선호도를 나열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왜 일부 개인들의 선호도가 다른 개인들의 선호도보다 더 중요한지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가 볼 때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평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자본들끼리 서로 가하는 압력이다. 왜냐하면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보다 더 높게 가격을 매기는 자본가는 모두 머지않아 업계에서 퇴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자본가는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법칙을 일종의 외부 강제력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이론을 위해 정작 현실의 위기는 무시해버린 주류 경제학의 오만이 이미 가치론에서부터 드러난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위기는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엄습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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