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고민 속 미래를 그리는 아프리카
정체성의 고민 속 미래를 그리는 아프리카
  • 허서연 기자
  • 승인 2012.05.20 0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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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드러난 여성과 탈식민주의로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자리
아프리카의 미래 논하기 위해선 다른 나라와의 소통 통한 정체성 확립이 우선돼야

지난 17일(목)과 18일, 이틀에 걸쳐 불어불문학과와 불어문화권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문화행사 「아프리카, 상상력의 보고(寶庫)」가 두산인문관(8동)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불어권 아프리카의 문화를 국내에 소개해 아프리카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사진: 남상혁 기자 as0324@snu.kr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변화하는 아프리카, 인문학으로 다가가기」라는 주제로 문학과 예술작품에 나타난 아프리카의 사회 모습을 통해 미래 아프리카의 모습을 전망했다. 학술행사는 이틀에 걸쳐 각각 △사회변동과 문학 △문학·정치·젠더 △문학의 새로운 모색 △아프리카 문화의 역동성과 풍요로움 △세계화,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아프리카의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서울대 교수 외에도 세계 각국의 학자들이 각 주제들을 불어로 발표했으며 모든 발표는 한국어로 동시통역됐다.

◇변화하는 여성상으로 짚어본 아프리카=첫날 발표에서는 문학작품을 통해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세네갈 작가 압둘라이 라신 셍고르는 아프리카 문학작품에서 여성이 어떻게 변화해 나갔는지에 주목했다. 가부장적 의식이 강했던 초기 아프리카 남성 작가들은 작품에서 여성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았거나 여성을 등장시키더라도 그저 관능미를 지닌 존재로 묘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유입된 1920년대 이후 신체의 조형적인 아름다움보다 여성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가 이뤄지면서 문학 속 여성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설화와 서사적인 이야기를 율동, 춤, 노래를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는 문학의 창작자·전수자 역할을 했던 여성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UN이 1975년 ‘여성의 날’을 제정하며 아프리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여성 소설가들이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재에도 점점 여성작가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는 순종적이기보다는 사회에 저항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세네갈 작가 우스만 셈벤의 작품 『신의 작은 숲』에 등장하는 여성은 ‘노동자 파업’이라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로 묘사됐다. 셍고르는 우스만 셈벤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소극적이고 순응적으로 규정된 아프리카 여성들을 이젠 정해진 틀 속에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탈식민주의 시각으로 본 그들의 정체성=아프리카의 문학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식민주의’라는 키워드를 빼 놓을 수 없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탈식민주의적인 관점에서 아프리카 문학을 분석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그 중에서도 자크 슈브리에 교수(프랑스 파리4대학)는 탈식민주의에서 강조하는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해 현대 아프리카 문학에 나타난 인물의 유형 중 ‘방황하는 인물’ 유형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황하는 인물은 식민지 지배와 기존 사회의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이와 함께 정체성을 잃은 사람들을 말한다.

가령 『메두사』에는 배꼽이 없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자신의 기원이 어디인지 몰라 혼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인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작품 『막다른 길』에서도 콩고 출신 아프리카인이 파리에 살면서 불안을 느끼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발표자는 “갈귀 없는 사자, 줄무늬 없는 얼룩말을 무엇이라 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문학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언급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 역시 정체성의 혼란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이들은 본인들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문화와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와의 괴리에서 상실감을 느끼며 결국 자신이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리디 에스테르 무딜레노 교수(미국 펜실베니아대)는 “작가들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프리카 사회에 정체성 문제를 환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그들의 고민이 결국 아프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세계화 속 아프리카의 미래=이번 학술대회의 마지막 순서는 세계화 속에서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한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이 공동으로 2055년 아프리카의 미래를 그려낸 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그들이 그린 2055년의 아프리카 모습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타지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모호한 규정이 현재 이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과 미래 아프리카 모습의 부재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무스타파 마슈라피 교수(모로코 모하메드 5대학)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아프리카의 미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도로부터 바뀔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했다. 아프리카 정체성에 대한 탐색과정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에는 가봉, 튀니지, 세네갈, 모로코 등 불어권 아프리카의 주요국가의 학자들이 두루 참석했다. 이번 행사에 대해 알베르틴 치빌롱디 응고이 교수(콩고민주공화국 카사이 ND대)는 “아프리카인들은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국제 무대의 다른 나라와도 활발히 소통해야 한다”며 “서로를 알기 위해서는 오늘과 같은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고 이번 행사의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모든 학술 발표가 불어로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는 동시통역의 미비로 행사진행이 원활하지 않는 등의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불어권 아프리카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동안 연구대상으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진지하게 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이번 행사를 마치며 불어문화권연구소 이건우 소장(불어불문학과)은 “이제 국내에서도 불어권 아프리카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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