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위기, 그리고 돌아온 마르크스
세계경제위기, 그리고 돌아온 마르크스
  • 나영인 기자
  • 승인 2012.05.20 0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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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라는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 세계적 경제위기는 익숙했던 자본주의적 일상과 끝없는 성장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이 절망과 무력감은 위기를 예측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20세기를 끝으로 ‘죽었던’ 마르크스 경제학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비롯해 각국 좌파 정당들이 점차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해가고 있으며 출판계에서도 마르크스 경제학과 관련한 저서들이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한 출판업자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론』의 판매부수가 100년 전과 견줄만하다고 하니 가히 마르크스의 ‘부활’이라 부를 수 있겠다. 무엇이 마르크스를 부활하게 했나. 정말 우리는 그에게서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대학신문』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이론을 재조명하고 오늘날 경제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해 본다.

참고문헌: 크리스 하먼, 『좀비자본주의』, 『부르주의 경제학의 위기』, 책갈피l알렉스 캘리니코스, 『무너지는 환상』, 책갈피

믿음이 무너지다

믿음이 무너졌다. 아니, 무너져야만 했다. 2008년 세계 금융시장의 붕괴와 연이은 2010년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한 믿음과 이를 위시한 주류 경제학의 이론을 근간부터 뒤흔들었다. 2007년 10월까지만 해도 국제통화기금(IMF)은 2000년대 호황이 1950~60년대 전(戰)후 자본주의 황금시대보다 더 낫다고 평가했지만 18개월이 채 안 돼 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경제위기 사이의 유사성에 우려를 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세계 총생산량이 감소했던 초유의 사태에 대해 대표적인 시장 자유방임주의자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 할 수 있었던 말이라곤 “아직도 저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 결함을 발견했지만 그 결함이 얼마나 심각하고 영속적인 것인지를 알지 못해서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2008)뿐이었다.

 물론 자본주의도, 시장도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다수의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문제의 원인으로 체제 자체가 아닌 ‘바람직한 시장’을 조성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을 꼽고 있다. 상처 입은 체제를 되살리기 위해 주요국 정부들은 대공황 시기에 케인스주의가 위기를 완화시켰던 경험을 떠올리며 황급히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금리 인하, 유동성 공급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 공급 방식을 비롯해 막대한 규모의 국가 재정이 투입됐다. 300년을 이어온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제로금리’ 정책을 실시했으며 미국을 비롯한 G20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GDP의 27.1% 이상(2009년 기준)의 자금을 금융안정에 투입했다. 유례없는 금융구제책 덕분인지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물경제가 더이상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회복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자금을 쏟아 부은 금융구제는 결국 2010년 유럽 각국의 재정적자로 귀결됐다. 재정지출에 소요되는 자금의 대부분을 국채 발행에 의존하다보니 국가 부채 역시 급격히 증가해 버렸다.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재정위기는 아일랜드, 포르투갈을 거쳐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로 번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로존 전체의 붕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위기는 단순하지 않다


지금까지 신고전학파, 케인스주의를 위시한 주류 경제학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위기에 대처했으나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들이 주로 대처한 방식은 금융제도를 규제하거나 국가 재정으로 위기를 메우는 식이었다.

 이러한 대처 방식의 기저에는 이번 위기가 다만 금융 수준에서 일어난 단기적 위기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사실 대중적으로도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최근의 위기가 ‘금융’위기이며 모든 문제의 원인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탐욕과 투기라고 보는 입장이다. 월가를 점령하며 화제가 됐던 ‘오큐파이 운동(Occupy Movement)’ 역시 금융자본의 탐욕을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짠 듯 꼬리에 꼬리를 문 일련의 사태들을 두고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이번 위기의 원인이 단순히 ‘금융자본의 탐욕’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석좌교수(성공회대)는 “오늘날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이며 지금까지 이뤄진 대응방식은 모두 임기응변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의 저자인 지주형 교수(경남대 사회학과) 역시 “지금의 방식으로는 해결이 어려우며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재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위기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에서 비롯됐으며 해결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은 마르크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이윤율 저하 경향과 경제위기


그렇다면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지금의 위기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마르크스의 핵심적인 통찰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자본과 임금노동 간, 그리고 자본들 간 적대적 사회관계(구조적 모순)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모든 가치의 창출은 노동으로부터 비롯되며 따라서 노동이 이윤의 원천이다(잉여가치론). 그런데 정작 노동자가 창출할 수밖에 없는 잉여가치 및 이윤이 자본주의하에서는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자본에 의해 착취되기에 자본과 임금노동 간의 관계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두번째 모순은 자본들 간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윤이 자본의 동력원이자 성공수단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몫의 잉여가치를 뽑아내기 위한 경쟁을 유도한다. 이런 경쟁 압력 때문에 자본들은 일정 수준의 착취를 할 수밖에 없고 생산 설비를 확장·개선하는 데 재투자됨으로써 스스로의 증식을 꾀한다. 이윤 획득을 향한 무한한 경쟁의 도정에서 자본 증식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것이다.

 바로 이 자본의 경쟁적 축적 과정이 마르크스가 파악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핵심이며 경제위기의 필연성을 정초하는 맹아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장벽은 자본 자체”인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라고 부른 이론을 통해 구체화된다.

 우선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투자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임금을 지급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를 ‘가변자본(Variable Capital, v)’이라고 불렀다. 가변자본은 노동력을 통해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Surplus Value, s)’를 실제로 창출해 가치가 증식되는 자본이다. 다른 부분은 공장, 설비, 원료와 같은 생산수단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 즉 ‘불변자본(Constant Capital, c)’인데 이는 기존 가치가 생산물로 옮겨질 뿐 가치가 더 커지지 않는 자본에 해당한다.

 주지하다시피 자본가에게 중요한 것은 투자한 총비용에 비해 이윤을 얼마나 많이 얻었는지의 여부다. 마르크스는 이를 ‘이윤율’이라 정의하며 임금과 생산도구와 원료에 드는 비용을 모두 포함한 총투자 대비 잉여가치의 비율(s / [c + v] )로 나타냈다.

 그런데 더 많은 이윤 획득을 목표로 하는 경쟁 구도하에서 개별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의 기술혁신에 투자를 감행함으로써 자신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는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생산비를 평균 아래로 낮춰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생산수단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규모도 증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임금 대 생산수단 가치의 비율, 즉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c / v)이 증가한다. 마르크스는 이 비율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 정의하고 이것의 증가가 자본축적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파악했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한다는 것은 곧 생산수단에 투자되는 자본이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투자되는 자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상기해야 할 점은 마르크스 경제학 체계 내에서 가치와 잉여가치의 원천은 오직 노동뿐이라는 점이다. 즉 정작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불변자본 부분이 가치 창출의 원천보다 비대해지는 것이다. 그 결과 투자 대 이윤의 비율인 이윤율에 하락 압력이 나타난다. 만약 실제로 이윤율이 하락한다면 기업은 기업 확장이나 시설투자를 중단하게 되고 이어 자본재(생산수단) 산업이 불황에 빠져 전반적인 경기 불황이 발생한다.

 이윤율의 저하는 체제 내에서 나타나는 장기적 경향이다. 그러나 이를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이윤율이 실제로, 꾸준히 저하해왔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대개의 경우 자본가가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이윤율은 상승할 수도, 하락할 수도 있다. 가령 기업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삭감해버리거나 정리해고를 하는 방식으로 이윤율 하락에 대응한다면(즉 ‘v’를 줄인다면) 이윤율 하락의 효과는 상쇄돼 오히려 이윤율이 상승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기업의 투자가 활발해지고 경기는 회복된다. 이윤 획득을 위한 경쟁 압력은 여전하기 때문에 기업은 또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이윤율은 새로이 하락해 경기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은 자본가들의 대처방식 및 여타 요인들과 상호작용하며 ‘주기적인’ 경제위기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고 해서 이 위기가 곧바로 자본주의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르크스에 따르면 주기적인 경제위기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회복시킴으로써 자본주의를 존속시키는 기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적정 수준의 경제위기는 위기에서 살아남은 일부 자본가들에게 파산한 다른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을 헐값에 사들일 기회를 제공하게 되고 따라서 사회 전반의 이윤율이 회복돼 경제가 다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제위기의 정도는 갈수록 심화돼 언젠간 도저히 경기가 회복될 수 없는 ‘구조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파악했다. 김수행 교수를 비롯해 크리스 하먼(Chris Harman),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등의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 최근의 상황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위기’라는 용어가 바로 이 ‘구조적’ 위기를 뜻한다.


 기생적 금융자본과 거품 경제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분명 경제위기 혹은 공황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는 단지 이윤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김수행 교수는 “마르크스가 분석한 대상은 산업자본 중심의 자본주의였다”며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금융 자본의 기생적 성격을 규명한 마르크스의 또다른 명제가 추가돼야 최근의 위기가 설명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금융화를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적 축적 방식이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 이미 구조적 위기가 시작됐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 지속된 ‘자본주의의 황금기’ 동안 노동자 계급은 급격한 세력 성장을 이뤘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복지국가 건설을 외치며 다양한 권리 획득을 요구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자본가들에게 심각한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기득권층은 곧 노동의 유연화, 노조 분쇄, 복지국가 해체 등의 신자유주의적 조치를 취했다.

 당시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대응이 착취도, 즉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 s / v )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켜 이윤율 저하 추세를 저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제로 보였다. 그러나 높은 착취도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소비를 감퇴시켰고 이에 따라 생산이 소비보다 많은 과잉생산 경향이 구조화되기에 이른다. 소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은 거의 반토막 나버렸고 전반적인 저성장 국면이 지속됐다.

 더이상 실물 부문에서 경제성장을 이끌어내기 힘든 상황이 되자 자본가들은 투자되지 못한 유휴자본을 금융 부문으로 몰고 가 투기를 하기에 이른다. 자본의 금융화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에 따르면 금융자본은 어떤 실질적 가치도 창출해내지 못하는 “허구적 자본”이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자본이 실물 부문보다 훨씬 비대해짐으로써 경제가 성장해도 가계의 실질적 소득은 증가하지 않고 자산 가격 등의 신용 거품만 거대해지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가계, 기업, 정부를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신용을 대출해줬고 이렇게 형성된 신용 거품이 경제성장을 떠받들었다. 그러나 거품은 터지기 마련. 알랙스 캘리니코스는 “금융시장 거품 덕에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돈을 더 많이 빌리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겨 졌다”며 “미국의 주택시장 거품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지자 서구 금융 시스템이 거의 파멸 직전까지 간 것이고 바로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지금 이토록 심각하고 장기화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자본의 비대화는 이윤율의 하락을 야기한다. 김수행 교수는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자본에 대한 투자 없이 이미 형성된 가치를 갉아 먹는 비생산적 금융자본만 성장하니 사회적 평균 이윤율은 갈수록 저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까지 미국의 이윤율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뒤메닐과 레비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에 이윤율은 1948년의 절반, 1956~65년 평균치의 60~75%에 불과했다.


 금융구제의 진실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최근 불거진 국가 재정위기 사태 역시 금융자본의 기생적 성격과 금융자본에 의해 포섭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전반에서 금융자본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한 상황이 ‘전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대규모 금융구제가 필수적이다’라는, 금융자본의 이해가 그대로 관철된 인식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행 교수는 “유럽 국가 부도 위기의 핵심은 주요 금융기관들이 이제 일국 정부뿐 아니라 유럽연합, IMF, 유럽중앙은행과 같은 국제적 기구로부터도 금융구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 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그리스 정부는 자국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한 재정자금을 주로 국채를 발행함으로써 확보했다. 기본적으로 국채는 이자율이 높기 때문에 미국 등 여러 다른 나라의 금융자본가들도 여기에 투자했다. 그런데 정작 상환 시기가 되자 유동성 공급 등에 이미 재정을 쏟아 부었던 그리스 정부로서는 국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국가 부도 위기가 닥치자 이른바 ‘트로이카(Troika)’라 불리는 기구들(유럽연합, IMF, 유럽중앙은행)에게 구제 금융안이 요청됐고 실제로 ‘트로이카’는 고강도 구조조정과 긴축재정을 조건으로 두 차례에 걸친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공된 구제금융이 그리스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채를 매입한 금융자본가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득은 금융자본이 얻으면서 정작 그 대가는 노동자들의 실업과 복지예산 감축인 것이다. 장시복 교수(목포대 경제통상학부)는 “무차별적인 금융 구제는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의 논리로 진행됐다”며 “경제 시스템의 공멸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진행된 막대한 규모의 금융구제는 손실을 사회 전체가 벌충해 주는 방식이며 금융자본에게 매력인 방식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미래, 또다른 믿음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고유한 모순과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위기가 진단될 수 있다면 마르크스 경제학이 내놓는 대안은 무엇일까. 대다수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 단순히 금융자본의 투기를 규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전체 경제영역에 대한 금융 부문의 비율 축소를 제안했다. 김성구 교수(한신대 국제경제학과)는 “금융시장의 지배를 제한해서 금융부문의 과잉화폐/과잉자본을 강제적으로 감가해야 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이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독점자본과 은행에 대한 사회화 프로그램의 도입이 불가결하다”고 진단했다. 김수행 교수 역시 “마르크스는 이윤이 아닌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를 생산활동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며 “이윤 탐닉에만 몰두한 금융자본을 정리해야 하며 산업자본의 육성 및 고용 진작을 통해 실물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위기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체제를 향한 전환점이라는 기조 아래, 저항의 힘을 끌어낼 계급투쟁이 필요하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박승호 소장은 “구조적 위기는 구조를 바꿔야만 해결될 수 있고, 따라서 구조를 둘러싼 격렬한 계급투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구조를 둘러싼 계급투쟁에는 당연히 자본주의 자체의 극복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설령 지금이 구조적 위기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의 노동자 계급과 시민 계급을 응집할 만한 비전과 전략이 부재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김수행 교수는 “강력한 조직력으로 노동자 계급을 응집시켜줄 노동조합이 오히려 또다른 기득권 세력이 된 상황에서 계급투쟁은 분노에 찬 개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이번 위기를 통해 사람들이 단순히 좌절의 경험에 머물러 있지 말고 자본주의를 개선할 혹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갖출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김정주 교수(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는 “대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진정한 이해를 잊어버린 채 다름 아닌 자본의 이해를 자신의 이해로 받아들여 왔던 것이 아닌가 한다”며 “자본에게만은 양도할 수 없는 대중과 노동자 계급의 이해가 분명하게 정의될 때에만 대중은 비로소 스스로의 대안을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 저항을 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한발짝 물러나보자. ‘위기’라는 단어의 묵중함에서 벗어나 바로 그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 익숙했던 것들로부터의 안녕. 그것은 분명 불쾌한, 혹은 공포스런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또다른 희망을 향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희망이 믿을만하다면 한번쯤 해볼 만한 ‘물러남’ 아닌가? 잊지 말자. 우리에겐 다른 것도 가능하다고 믿을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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