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어느 PD의 이야기
다큐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어느 PD의 이야기
  • 박차리 부편집장
  • 승인 2012.05.20 0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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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MBC 시사교양국 김진만 PD

지난 2009년 아마존 조에족의 삶을 실감나게 다뤄 우리 다큐 역사상 전무후무할 20%를 웃도는 시청률로 주목받았던 다큐 「아마존의 눈물」의 제작자 김진만 PD가 올해 초 「남극의 눈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이야기’있는 ‘따뜻한’ 다큐로 스타 PD의 지위를 공고히 한 김진만 PD를 지난 16일(수) 서울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진만 PD는 참 ‘진만진만’하게 말한다. 그의 화법은 시종 진지할 것이라 상상한 다큐 PD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다 어느 순간 돌연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멈추곤 했다. 상대가 잠시 마음을 놓는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재치 있는 말을 던지며 이야기의 흐름을 웃음으로 진동시켰다. “‘김태호 PD’와 ‘그 밖의 여러 PD’들이 참여한 MBC 방송대학에서 저는 뭐, ‘그 밖의 여러 PD’ 중 한명으로 참석했죠.”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이 이런 식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말 속에 간간이 유머를 곁들이고, 무엇보다 사람과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 보이는 그는 ‘수다의 일초식’을 아는 사람 같았다. 다음은 PD로서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MBC 언론사 파업에 대한 생각까지, 있는 그대로를 옮겨 담는 다큐처럼 시종 어떤 가식과 의도도 없이 솔직했던 그와 나눈 수다의 기록이다.

인터뷰|김소라 편집장
정리|박차리 부편집장
사진|길은선 사진부장


재미와 소통을 좇는 히치하이커

두시간 남짓의 인터뷰 동안 김진만 PD에게서 제일 많이 나온 단어는 단연 ‘재미’였다. 김 PD는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당시 한때 고시를 준비했다. 고시 공부에 매진하던 그가 PD를 꿈꾸게 된 건 MBC 김영희 PD의 강연을 들은 후부터다. PD의 무엇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냐는 질문에 그는 “창의적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점”이라고 답한다. “자유롭고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딱 맞는 직업이 나타났다 싶었어요. 고시생으로선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마냥 즐겁게” PD 시험을 준비한 그는 1996년 예능국 PD로 MBC에 입사했다. “평소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데다 예능이라면 더더욱 창의적인 제작이 가능할 것 같아 지원한” 예능국이지만 김진만 PD는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조연출을 끝으로 시사교양국으로 이동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재미를 좇으려는 그와 교양 프로그램은 선뜻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운을 떼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당시 예능국 선배들도 그랬어요. 저는 뼛속까지 예능인이라고요. 전혀 교양적이지 않다는 말도 덧붙이셨죠.”

주위의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사교양국으로 옮기고 싶었던 이유는 의외로 또다시 ‘재미’에 있었다. “예능 방송 보면 정말 재밌잖아요. 그래서 과정도 당연히 재밌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너무 많은 인원과 간접적으로 소통해야 하더라고요. 스태프가 보조수단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에 내가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진 거죠. 그때 연예인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반인과 직접 부딪혀 가면서 소통하면 다시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사교양국으로 옮겨온 김 PD는 「PD수첩」에서 포이동 판자촌 주민의 애환을 다큐로 다루고 재벌 간의 친인척 연관관계를 분석한 ‘혈맥도’ 등을 작성하며 일반인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김진만 PD의 부서 이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PD 생활은 가히 재미를 좇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와 같았다. 영화와 만화 더빙을 책임지는 영화부에서, 편성을 기획하고 싶어 편성국으로, 프로그램 제작 일선에 직접 서고 싶어 프로그램 개발팀으로, 그리고 다시 다큐가 만들고 싶어 시사교양국으로 그는 계속 소속을 바꿔가며 일해 왔다. 「PD수첩」, 「성공시대」부터 「닥터스」, 「네버엔딩스토리」, 「휴먼다큐 사랑」까지. 이 과정에서 그가 거치고 만들어온 프로그램들도 상당하다. 프로그램 한 컷 한 컷마다 눅진하게 쌓인 재미의 흔적들을 되짚는 그의 얼굴엔 연신 미소가 가득하다. “정규 프로그램이 되진 못했지만 제가 만든 재밌는 프로그램도 많아요. 방청객이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뿅망치 본 적 있으시죠? 그게 실은 5% 시청률로 고이 접어야 했던 「뉴스왕」이란 프로그램에서 제가 처음 만든 거였어요. 프로그램은 죽었지만 뿅망치는 살아서 나간거죠. 또 미국 연수를 다녀와서 아나운서 공개 오디션 ‘나는 아나운서다’를 기획한 적이 있는데 몇년 전 다른 피디가 비슷한 방송을 제작한 걸 보고 웃음 지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를 닮은 다큐, 대중과 소통하다

“여러 곳에서 많이 경험해보고 지금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 같다”는 그의 현재 소속은 시사교양국의 다큐 PD다. “시사교양국 밖에서 다큐에 대해 많이 고민해왔다”는 그는 “왜 대중은 다큐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 또 타 방송사의 다큐에 비해서도 유독 인지도가 낮은 「MBC스페셜」을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MBC 시사교양국 다큐 PD로서의 책무라고 판단했다.

그는 “기획의도와 의미에만 초점을 맞춘 다큐보다는 우선 재미있는 다큐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큐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그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며 “미시적인 것을 통해 거시적인 것을 읽어내도록 이끄는 게 대중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PD가 말하는 이야기는 곧 소통이다. 「휴먼다큐 사랑: 로봇다리 세진이」(2009)에서 그는 장애인 수영선수 김세진씨가 대회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희망차게 그리는 데 주력한다. 「휴먼다큐 사랑」 연출 경험을 통해 한 사람과의 지속적인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 그는 연이은 ‘눈물’ 시리즈에서 그 땅의 주인과 끝없이 소통한다. 「아마존의 눈물」에서는 “치명적 옴므파탈” 모닌 등 조에족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고 「남극의 눈물」에선 말이 통할 리 없는 펭귄의 삶을 묵묵히 기다려 담아낸다. 무리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움직임을 차분히 따르는 장면들을 보며 대중은 그곳을 메우는 공기의 밀도를 읽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 PD는 대중과의 소통을 도모하며 아마존 부족들의 순수함, 자식을 살리려는 부모의 애끓는 사랑 등을 오롯이 전달한다. “「남극의 눈물」을 촬영하면서 많은 분들이 펭귄을 한 회 내내 보여주는 것을 반대했어요. 하지만 전 펭귄의 삶이 충분한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거기엔 남극에서 버텨내야 하는 이야기, 함께 살아가려는 배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다리 세진이」에 이어 ‘눈물’ 시리즈에서도 배우를 내레이션으로 섭외한 것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정보 전달에는 성우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배우는 목소리로 시청자에게 다큐의 정서를 가장 잘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며 “홍보하기 좋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웃어 보인다.

재미있는 다큐를 위해 그는 제작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전에도 MBC는 거액을 들인 다큐에 제작기를 방송하곤 했지만 김 PD는 그간 방송됐던 제작기에 대해 “여전히 진중한 분위기로만 만들어져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긴 어려웠다”고 말한다. “제작기에 진짜 우리 이야기로 재미를 얹고 싶었다”는 그는 「아마존의 눈물」 제작기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해 아마존 생활 모습을 흡사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박 2일」의 극한 버전처럼 재치 있게 전한다. 김 PD보다 훨씬 어린 조에족 소녀가 김 PD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장면을 “조에족 사람들이 애완동물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전달하는가 하면 흡혈박쥐와 모기로 일그러진 제작진의 표정을 여과 없이 전하는 식이다.

그는 “진지함을 못 견디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큐에서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대중에게 친근해지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리 있는 구성과 예능처럼 재미있게 찍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우리 다큐의 판을 키워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다큐 팬이 만들어지면 외국 다큐에서 지향하는 마니아적인 다큐도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는 때가 오겠죠.”


부담 속 탄생한 또 하나의 '눈물', 눈물의 의미를 묻다

재미있는 다큐를 만들려는 노력의 결과 「아마존의 눈물」은 20%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극장에서도 개봉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마존의 눈물」의 성공은 김 PD를 일순간에 ‘스타 PD’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갑작스런 인기에 대해 “오랫동안 다큐에 헌신해온 수많은 선배들을 따돌리는 느낌이 들어 민망하다”고 말한다. “저 자신은 다큐에만 헌신해 온 사람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저 제가 재밌는 일을 찾아서 다양하게 살아온 사람인거죠. 한 선배는 ‘나는 다큐만 수십년을 해도 사람들이 몰라보는데 너희는 민망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한없이 죄송했어요.”

이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은 「아마존의 눈물」 제작 이전부터 차기작으로 정해져 있던 「남극의 눈물」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졌다고도 한다. 그는 “블리저드나 흑야가 올 때면 기지 안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결국은 프로그램 걱정만 했다”고 말한다. 덧붙여 “같이 간 촬영감독이 ‘잘 될 거다’나 ‘지금 살아 돌아가는 게 문제지, 그건 걱정거리도 안 된다’고 말해준 게 많은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300여일간을 남극에서 극한의 추위와 고독, 기다림과 분투하며 「남극의 눈물」을 제작한 김 PD가 그간의 ‘눈물’ 시리즈를 통해 하려고 했던 말은 무엇일까. 그는 “동시대의 지구에서 북아프리카의 코끼리는 물이 없어 갈증으로 죽고, 아마존 부족민들은 유입되는 도시 문명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남극에서는 펭귄이 바다를 못 건너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마존과 남극에서 결국은 문명에 의해 파괴돼 가는 환경을 기록하다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왔을 때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진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전혀요. 오히려 끊임없이 그리워했다는 표현이 맞겠죠. 문명은 마약과 같은 것 같아요.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길들여지는 거죠. 자동차가 지나가고 반짝이던 도시의 불빛을 봤을 때는 행복감마저 느꼈어요.”

그는 문명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에 전혀 변화가 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눈물’ 시리즈를 통해 여럿이 함께 알수록 힘이 커지는 정보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싸울 수 없지만 아마존을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명이 공유하면 보다 큰 힘을 가질 수 있음을 알았다”고 밝힌다. 또 “종이컵을 쓰는 게 불편해 텀블러를 사용”하는가 하면 “목장과 콩 농장이 아마존 파괴의 큰 원인이란 점을 생각해 육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PD가 PD 답기 위하여

다큐 「남극의 눈물」 은 모두 완성된 지 오래고 심지어 극장판이 준비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시청자들은 여전히 안방극장에서 「남극의 눈물」 에필로그를 기다리고 있다. MBC 노조 파업으로 에필로그 방영이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김진만 PD는 「남극의 눈물」 방영 중단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첫 회에 시청률이 13%가 나오더니 다음 회에는 17%까지 올랐어요. 이런 추세면 20% 돌파도 가능하겠다고 기대했는데 딱 파업 때문에 방송이 무기한 연기돼 버렸네요.”

들떠있던 인터뷰 현장에는 파업 이야기로 무게감이 감돌았다. 김진만 PD를 만난 지난 16일은 MBC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지 107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 PD는 현재 노조원으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남극에 있는 동안 빨리 파업해서 귀국했을 땐 다 정리되고 마음 편히 방송할 수 있기를 바랐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말에서 “공영방송을 위해 입사한 직원들에게 공영방송을 못하게 하는 건 심각한 처우의 문제 아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MBC는 공영방송입니다. 뉴스와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이 뼈대를 이루고 교양, 예능 프로그램들이 살을 이루는 구조죠. 그런데 지금은 그 뼈대가 잘못돼 있습니다. 공영방송의 직원들이 잘못된 사안을 잘못됐다고 방송할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겠다는 문제의식을 정치파업으로 치부한다면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해요.”

중도이탈자가 발생하며 파업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 에는 “신입사원 15명이 동시에 노조를 가입해 파업 참여 인원은 더 늘었다”고 대응했다. 한편 “오히려 아나운서들의 복귀로 노조 내부는 더 견고해졌다”며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대의와 명분을 지키기 위한 이번 파업을 멈추진 않을 것”이라며 가볍지만 묵직한 결의를 내비쳤다.

100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파업에 무엇이 가장 어려운지 묻자 그는 “월급이 안 나오는 것”이라고 답한다.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것도 분명 심각한 문제지만 그래도 앞서 펼쳐왔던 공영방송에 대한 대의에 비해 초라한 대답이지 않냐고 되물으려는 찰나 그는 “입사 4년차에 올해로 파업이 4번째”라는 한 PD 후배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입사한 후배를 파업 현장에서 보는 게 마음 아픕니다. PD는 프로그램 만드는 게 제일 재밌고 시청자들의 반향을 얻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데 그걸 못하는 게 제일 답답합니다. 저만 해도 「남극의 눈물」 에필로그로 화룡점정을 찍고 싶었는데…. 아, 오히려 한여름에 겨울 장면이 나가면 더 좋을까요?”

김진만 PD는 파업에 대한 굳은 의지를 다지면서도 앞으로 하고 싶은 다큐를 고민하는 데 여념이 없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은 갈수록 심해지지만 MBC가 바로잡아져 다시 다큐를 만들 수 있게 되는 날 “종교처럼 인간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한 번 재밌게 다뤄보고 싶다”는 꿈을 내비친다. 또 “5년, 아니 10년 후라도 아마존 부족민들을 다시 보러 가고 싶다”고 소망한다. “아마존과 남극 둘 중 하나를 다시 가야한다면 아마존을 가보고 싶어요. 펭귄은 우릴 기억해주지 않을 테지만 부족민은 다르잖아요.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우리 조연출을 좋아했던 소녀가 아직도 그 마을에 살고 있는지 뒷이야기가 궁금해요.”

이전 작들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는 스타 PD라는 호칭이 하염없이 “민망하고 죄송해” 안착하지 못하고 더 재밌는 다큐를 향해 또다시 열심히 부유하고 있다. 재미를 좇아 다큐의 은하수를 부단히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PD의 여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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