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여성 15.6%에 불과…여성 할당제
의무화하고 남성 중심적 정치문화 바뀌어야

그래픽: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지난 총선에서 정치 전면에 나섰던 원내 제1·2당의 대표는 모두 여성이었다. 그러나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여성은 15.6%인 47명으로 스웨덴(46.4%)이나 아이슬란드(42.8%) 등 북유럽 국가의 여성 정치인 비율에 비해 턱없이 낮다. 제도적으로도 지난 2000년부터 남녀 50% 공천을 의무화하고 있는 프랑스 등에 비하면 한국의 여성 정계진출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신문』은 지역구 여성 의무 공천제 조항 도입 10년을 맞아 여성의 정계 진출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을 짚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 봤다.

◇여성의 정계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장벽들=전문가들은 여성이 정계에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요인 중 하나로 지역구 경선제도의 불리함을 꼽는다. 정치 신인이 대부분인 여성의 특성상 선거인단 규모나 지역 기반 등 경선 자원을 갖추는 데 상대적으로 불리해 자연히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대부분의 정당에서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으로 충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역구 대표의 경우 여성 공천은 15% 수준에 그쳤다. 이에 김민정 교수(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는 “오랫동안 지역구에서 기반을 다져온 남성 중심으로 공천이 이뤄지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린 여성은 후보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여성국 윤미라 과장은 “여성들은 공천 준비 과정에서부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남성에 비해서 많이 미비해 공천에 어려움이 있다”고 그 한계를 짚었다.

대중적 인식이 여성 정치인에 부정적이라는 점도 난관이다. 여성의 정계 진출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해 이를 제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성 정계 진출의 공론화가 이뤄져야 정치권 내 여성 진입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참여 기회 확대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받아들여지고 여성들이 ‘의무는 방기한 채 권리만 찾으려 한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이수인 교수(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는 “현재 명시적으로 제도화된 차별은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여성이 정치에 나선다는 데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다”며 “유권자들이 여성을 유능한 정치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일반적 통념”이라고 비판했다.

◇여성 할당제, 유리장벽을 깰 수 있을까=여성 정계 진출을 활발히 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여성 할당제 의무화를 꼽는다. 현재 여성 할당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역구의 경우 권고사항에 그치고 강제성이 없어 대다수의 정당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지방의회선거의 경우에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50% 할당을 지키지 않은 정당 명부를 무효처리 하지만(공직선거법 52조 2항) 국회의원 선거는 이러한 조항이 없어 여성에게 50%를 할당하지 않더라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양현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문화가 바뀌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라도 할당제를 의무화해 선순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대 총선에서 각 당은 여성 의원을 일정 비율 이상 할당하겠다고 밝혔지만 강제성이 없어 허언에 그쳤다. 새누리당은 지역구 후보에 여성을 30% 공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과적으로 7%인 16명만 공천했다. 민주통합당은 당헌당규에 여성 후보자에게 공천심사에서 20% 가산점을 부여하고 지역구 공천 후보자를 15% 이상 여성으로 추천한다고까지 명시했으나 전체의 10%인 21명만이 공천됐다. 통합진보당 역시 20%를 여성 의원으로 할당한다고 당헌당규에 명시했으나 결과적으로 13.7%만 할당하는 등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당 내 반발을 넘어서는 것도 할당제가 넘어야 할 과제다. 당 내 일각에서 여성 할당제가 역차별이라며 반대하는 등 여성 정계진출이 활성화되는 데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민주통합당의 경우 지역구 15% 후보를 여성으로 충원한다는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도 당내의 충돌이 상당했다. 일부 남성 의원들은 여성의무공천이 공정한 경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며 전면적으로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여성 정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전문가들은 할당제를 넘어 장기적으로 여성들이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성 정치 아카데미를 설치하는 등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정 교수는 “당 내에서 차세대 여성들이 정치에 뜻을 두고 훈련받아 지지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 여성 최고위원을 1명 이상 두도록 하는 등 규정을 마련해 여성들이 당내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수인 교수는 “여성 할당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나가는데도 당 내에 전문적인 여성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이 여성 정치인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며 “자치단체 등에 여성 의원을 일정 수준 이상 두는 등 지역사회에서 실질적인 여성 정치인 참여를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성 중심적인 정치 문화가 보다 선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도 목소리를 같이했다. 정치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은연 중에 깔린 인식이 변화해야 여성 정계 진출이 보다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여성 정계 진출에 대한 수치를 나타내는 UNDP 여성 권한 척도가 중동, 아프리카 지역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 남성 위주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양현아 교수는 “정치권에서 여성들은 당에 의해 수혜받는 입장으로서만 기능하는 등 소수자화되고 대상화되는 면이 있었다”며 “여성 정치 확대를 위한 캠페인이나 홍보 활동을 펼쳐 성편향적인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정계 진출이 장기적으로는 여성 정치인들이 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여성 정치인 확대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 당 여성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의제를 발굴하고 성공적인 의정 활동을 펼치는 등 여성 정치인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원홍 박사는 “여성 정치인이 지역에서 원하는 공약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발한 정치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여성 정치인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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