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단체들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차별금지법 도입 촉구
부정적 여론, 국회의 낮은 관심 극복이 관건

지난 17일(목)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성소수자 혐오 종식을 위한 차별금지법 요구 기자회견이 광화문 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렸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인권운동연대체인 무지개행동은 이날 성소수자 혐오는 부당한 폭력이라며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을 통해 성적지향 외에도 학력, 연령, 출신국가 등 각종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모두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헌법상의 평등 원칙을 실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이소아 변호사는 “성적 소수자들이 감시와 통제 속에서 차별받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는 법적으로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번번이 도입에 실패한 차별금지법=2009년 유엔 경제•문화•사회적 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성소수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차별 실태를 우려하며 정부가 포괄적인 조항을 담은 차별금지법을 신속히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정부도 2011년 6월 유엔인권이사회의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결의안에는 찬성했으나 성소수자 조항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도입에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2007년 정부는 “「대한민국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해 사회통합에 기여함”을 제안 이유로 밝히며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성적지향과 학력을 포함한 7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해 논란이 됐고 이마저 2008년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대학신문』 2007년 11월 12일자).

이후에도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 2008년 1월에는 노회찬 의원 등 10인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으나 역시 임기만료로 폐기됐고 2010년 4월에도 법무부 산하에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가 꾸려져 차별금지 사유 대상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으나 아직까지 진전된 바가 없다. 2011년 12월 권영길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도 오는 29일 18대 국회가 만료되면 자동 폐기된다.

차별금지법 도입의 계속적인 무산은 성소수자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기독교유권자연맹을 비롯한 각종 보수단체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반인륜적인 행위를 용인하는 꼴”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 형법 92조의 헌법재판소 위헌제청 심판을 앞두고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 등 시민단체들이 6만명 서명서와 탄원서를 제출하며 위헌제청에 크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 전문가들은 인권은 보편적인 권리이므로 여론과는 별개로 동등한 시민적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이소아 변호사는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논의가 힘들다고 하지만 성소수자 조항 포함 문제는 인권과 평등권이라는 당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소수자 관련 정책, 실현 가능성은=19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는 데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4•11 총선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공약에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포함하지 않았고 이를 명시한 당은 통합진보당, 녹색당, 진보신당의 3곳뿐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나 인권교육 시행의 제도화 등 비슷한 정책을 내놓았으나 이마저 청년, 복지 공약 등 다른 이슈에 비해 미미한 수준에서 논의됐다. 또 게이유권자파티가 지난달 2~6일까지 19대 총선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질의응답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성소수자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 이는 민주통합당 19명, 통합진보당 8명, 새누리당 4명으로 전체의 10.3%인 31명에 불과했다. 여성주의 시민단체 언니네트워크의 정현희 운영위원은 “19대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강하게 모이지는 못할 상황”이라며 “대선 이후에도 의제화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지만 계속해서 운동을 전개해 성소수자 인권 정책화의 필요성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성소수자들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이 되려면=인권 전문가들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외에도 인식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도적 변화도 결국 인식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반쪽에 그친다는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훈창 활동가는 “작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적 차별금지 조항이 삭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농성과 캠페인을 진행했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조항이 다시 포함됐던 적이 있다”며 “성적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운동을 벌여나갈 때 결국 제도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성소수자가 연대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소수자 관련 정책이 보다 활발하게 논의될 수 있으려면 그들이 직접 정당 안팎에서 실질적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대안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현희 운영위원은 “실제로 진보정당 안에서도 성소수자위원회가 직접 정책안을 올리는 등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소수자를 위한 공약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며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나서야 정당과 정부, 사회가 보다 현실성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성소수자의 정치 참여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소아 변호사는 “자신을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아직 금기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에게 정치적 목소리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며 “성소수자의 섣부른 정치세력화보다는 문제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