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마만다 아디치는 “일방적 이야기의 위험”이라는 강연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유일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발생하는 편협한 고정관념의 위험에 대해 말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녀가 읽은 영국소설 속의 주인공은  진저비어(Ginger Beer)를 즐겨 마시는 파란 눈을 가진 백인이었다. 그녀는 영국인 모두가 소설속의 주인공 같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인 중에는 파란 눈이 아닌 사람도 많으며 진저비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선입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곳 관악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모여져야 비로소 “관악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어떤 이슈에 대한 개별 주장은 하나의 이야기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요즘 필자에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총학생회는 ‘국립서울대 학생권리 선언 종합요구안’을 수립하고, ‘5.31 학생총회’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정관(본부) 점거를 안건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리 결론을 내어 하나의 이야기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이맘때 약 1개월간 행정관이 점거되는 서울대 사상 초유의 일을 겪으면서 우리 관악인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또 다시 유사한 일을 전제하는 총회를 연다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하나의 일방적 이야기가 관악 전체의 이야기로 인식될까 두렵다. 이에 더해 우리사회에서 서울대에 대한 정형화된 관념이 형성될까 겁이 난다.

우리는 경청과 대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 본부와 학생대표자가 대화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필자는 듣고 있다. 매우 희망적인 일이다. 대화협의체에서 모든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서울대가 세계적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새로운 전통과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 모든 문제와 요구는 대화를 통해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결론을 미리 상정해서 대화를 진행해서도 안된다. 일방적 강제나 점거 등 비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더욱 안된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우리 공통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대학이 지식의 전당이 되고 평화와 민주의 성지가 되는 것이다.

본부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민주적 절차와 평화를 존중하는 학생들의 주장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경청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우리 서울대를 따뜻하지만 냉정한 눈으로 똑바로 지켜보고 있는 사실을 학생, 본부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단편적인 이야기를 거부하고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일면적, 일방적 이야기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성인답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새로운 전통을 세워나가야 한다.

변창구 교수
인문대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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