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일년에 네번 제사를 지낸다. 설, 추석, 조부모님 기제사 이렇게 네차례다. 매년 치르는 제사 의식에 큰 변화는 없다. 여자들이 종일 음식을 준비한다. 남자들은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도와주거나 제기를 닦으며 제사 시간을 기다린다. 시간이 되면 남자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제사를 시작한다.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고 절을 한다. 여자들은 주방에 있다가 때에 맞춰 음식을 나른다. 남자들이 마지막 하직 인사를 마친 후, 그제서야 여자들은 제사상 앞에 모여 예의를 갖춘다. 어릴 때부터 궁금했다. 왜 여자들은 제사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는지.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남자들에게 제안했더랬다. 여자들도 같이 절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남자들은 웃으며 제사란 게 그런 게 아니라며, 전통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나의 제안을 물리쳤다. 여자들 역시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월요일 아침이면 전체 조례를 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나란히 줄을 맞추면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이어지는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다시 차려 자세로 애국가를 부르며 덜 깬 잠을 쫓아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교장선생님의 기나긴 훈시가 끝나면 체력이 바닥났다. 나름 극기훈련이라고 생각하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내 한몸 바치리라 다짐했다. 축구 국가대표 한·일전을 보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조국의 승리를 염원했고 올림픽에선 우리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많이 딸 수 있도록 목 놓아 울부짖었다. 심판이 편파 판정을 하든 말든 상대선수가 어떤 멋진 플레이를 펼치든 내 알 바 아니었다. 모두가 적이었고 우리 한국은 어떻게든 이겨야만 했다. 이렇게 형성된 유소년기 나의 세계관은 나를 극히 좁은 공간에 가둬 놓았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도록 만들었다.

요즈음 말 많고 탈 많은 한 정당에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당의 공동대표 중 한명이 문제제기를 했고 주요 언론매체들이 이를 계기로 공격을 퍼부었다. 국고를 지원 받는 공당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느니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한다느니 비판이 거셌다. 그런데 국기나 국가는 한 국가를 상징하는 편의적 도구일 뿐이지 않은가. 국가 차원에서의 행사에서나 사용되면 그만인 것을 시민사회에까지 강요하는 것은 과도한 국가주의의 폐해가 아닌가 싶다. 문제제기를 했던 그 대표 역시 과거에는 “군사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라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국민의례가 아닌 민중의례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이 땅의 자유와 민주를 향한 지난한 역사,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민의 열망을 부정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국민의례를 ‘국가에 대한 예의’라고도 풀이하는 모양이다. 이 구절이 말이 되는지는 둘째 치고, 국가가 우선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기를 고대한다. 사상,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 한가지 더. 앞으로 야구장에서는 애국가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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