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운 지음
5·18 광주 민주화 운동(5·18)이 일어난 지 3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18의 진실 규명은 아직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기존 5·18 연구가 사상자 수나 당시 항쟁에 참여한 시민의 수와 같은 구체적인 수치에만 치중해왔기 때문이다. 5·18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민들이 겪은 내적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 책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삶과 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던 『오월의 사회과학(1999)』이 이번에 개정 출판됐다.

저자 최정운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여태까지의 5·18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한다. 그는 “사실 확인과 진상규명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어 당시 광주의 상황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며 기존 5·18 연구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5·18을 경험했던 광주 시민들의 경험과 감정 상태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막스 베버의 ‘이해하기 위한 사회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방법론은 5·18의 현장에 있었다고 가정하고 당시 광주 시민들이 느꼈을 감정이나 생각을 감정이입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5·18의 진정한 의미는 구체적인 사건 경위가 아닌 시민 개개인의 내면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5·18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말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광주 시민들이 느꼈을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 섬뜩함, 환희 등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법론에 입각해 그는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의 방대한 증언을 바탕으로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저자는 5·18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절대공동체’를 꼽았다. 책에 따르면 절대공동체는 ‘폭력에 대한 공포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며 서로의 인간됨과 존엄성을 확인한 공동체’로 정의된다. 절대공동체의 형성과 몰락 과정을 통해 5·18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남로 일대에 모인 사람들을 진압하는 공수부대에 분노한 30만 광주 시민 각자가 나서 계엄군에 맞서 싸웠다. 회사원, 학생, 노동자 모두가 함께한 시위에서 시민들은 공동체의 책임감을 느끼며 절대공동체를 형성했다. 절대공동체를 구성한 사람들의 투쟁으로 시민군은 5월 20일 계엄군의 철수를 이뤄냈다.

하지만 절대공동체가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었다. 공수부대의 탄압이 극심해진 19일, 이미 대학생들은 시위대에서 사라졌고 노동자 계급과 기층민들만이 남았다. 그들이 서로 다른 집단, 다른 계급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 제기됐던 문제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문제였다. 계급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절대공동체의 균열로 이어졌고 결국 20일 계엄군 철수 후 시민군의 분열을 야기했다. 시민군은 무기를 계엄사에 반납하자는 수습파와 끝까지 싸우자는 항쟁파로 나뉘며 26일까지도 내부 갈등을 겪었다. 저자는 “시민군이 국가의 형태를 갖추면서 절대공동체 내부에 계급의 차이, 신분의 차이가 생겼다”며 “그로 인해 시민들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사이에 혼란을 느끼게 된 것이 균열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광주 시민의 투쟁은 6월 항쟁과 민주화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된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5·18이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닌 우리의 역사를 새로 시작하는 사건이며, 우리의 영혼을 새로이 일깨운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5·18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지만 침묵 속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해왔다. 논의됐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5·18에 대해 엇갈리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또 『오월의 사회과학』이 광주 시민들의 죽음으로 지켜낸 5월의 진실과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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