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서조차 잊혀진 쿠바의 한인들

21세기 초입 우리는 물자와 사람이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다양한 이유로 한국 정부와 공식 외교 관계가 없는 나라들이 있다. 『대학신문』은 이들 나라들을 소개하여 연재하기로 한다. 2003년 8월 현재 미수교국은 쿠바, 시리아 등 6개국(북한과 대만 포함)이다.

온몸을 흔들어 추는 열정의 춤 '살사', 혁명가 체 게바라,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문학작품 『노인과 바다』. 중남미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음악그룹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카리브해 위에 마치 한 일(一)자를 자유분방하게 써놓은 듯한 모양을 한 아름다운 섬나라 쿠바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다. 1949년 수교를 한 이래 1959년 '쿠바혁명'으로 쿠바가 공산화 되면서 한국과 국교가 단절됐지만, 지난 시절 두 나라는 가까운 사이였다.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공산화 이전 바티스타 정부는 한국 전쟁 때 279만 달러 상당의 원조를 한국에 제공한 바 있다.


미국의 플로리다 반도 바로 아래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쿠바는 1961년 미국의 피그스 만 침공,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부터 최근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반체제인사 투옥 등 미국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왔다. 미국은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을 일으켜 친미성향이던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내고 미국 재산을 몰수하자 1961년부터 봉쇄정책을 펴왔다. 21세기 들어서도 쿠바는 '불량국가', '악의 축', 테러 지원국, 종교 탄압 국가, 인신매매 방조국 등 미국 국무부가 작성하는 각종 블랙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오르고 있다. 이를 이유로 미국이 가혹한 경제제재를 하는 바람에 90년대 초 단행한 대외 개혁 개방 조치에도 쿠바 경제는 침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쿠바에는 '꼬레아노(coreano)'로 불리는 한인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1905년 멕시코의 '애네껜(hene-quen)' 농장으로 노동 이민을 간 한인들 가운데 일부가 고된 농장 일을 견디다 못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중남미 지역으로 떠났다. 체벌과 굶주림, 그리고 뙤약볕 속에서 살갗을 파고드는 가시가 빼곡이 돋친 에네껜 나무의 커다란 이파리만을 골라 베어내는 일은 악몽같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와 가까운 쿠바는 멕시코 한인들이 택한 첫 번째 이주지였다. 1921년 에네껜 농장의 한인들은 멕시코를 떠나 바다 건너 설탕산업이 성황을 이루던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또 한 번 이민을 결심해야 했다. 이들의 후손들이 쿠바의 꼬레아노이다. 이들은 국교가 없는 나라에 산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의 관심에서 늘 비켜 있었고 외면을 받아왔다. 한국 정부는 지금 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 후손들의 숫자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는 정확한 통계 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다. 두 나라 사이에 공식 외교 관계가 없다 보니 쿠바 한인들의 권익 보호를 담당하기 위한 현지 한국 영사관도 없다. 또 쿠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인들 가운데에는 해외 독립 지사의 후손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위한 기초 실태 파악 역시 제대로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교 문제에 대해 외교통상부 중미과의 한 관계자는 "국제사회에서 제기하고 있는 쿠바의 인권 상황 등 쿠바와의 수교에 여전히 걸림돌이 존재한다"며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수교의 이유가 어찌됐건 국교단절 이후 지난 반세기에 달하는 미수교 상태의 지속으로 조국에서조차 쿠바의 한인들은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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