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 재선거 반대표에 담긴 비논리성
학내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어
이번 학생총회에서도
표현하는 소수의 비논리적 선택을 바란다

지난 4월, 개교 이래 최초의 ‘단독 선본 출마’라는 54대 총학 재선거에서 사실상 선거의 성사는 곧 당선을 뜻하는 것이었다. 최선 또는 차악을 뽑는 것이 아니라 신임을 묻는 것으로 선거의 성격이 변하면서 득표수보다는 투표율이 중요한 관심사가 됐고 적극적인 투표 독려는 선거운동이나 다름없어졌다. 출마한 선본이 맘에 들지 않는 학우들은 처음부터 아예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간 무산과 연장을 거듭해온 서울대 총학 선거의 역사상, 사표가 될 것이 분명한 반대표를 던져 성사 가능성을 높여주기보다 투표를 거부한 채 무산을 기대하는 게 타당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총학 선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진정한 반대도 온전한 지지도 아니었다. 나같은 애매한 회색분자들 천여명의 표가 모여 선거를 성사시키는 데 일조함으로써 54대 총학이 출범할 수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마한 선본이 싫었다’는 짧은 말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학생사회의 대표로서 총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후보가 가진 정치적 의견과 나의 것이 다르고 그들의 공약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 반대표로 인해 당선 이후에도 총학이 학생사회에 다양한 의견이 있음을 간과하지 않고 현명한 대처를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반대표에 내재한 모호한 비논리성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실천이었다.

 이번 학생총회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총회가 성사는 될 수 있을지, 지금 이 시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가득하다. 주변에서 학생총회가 화제가 되는 것을 목격한 바가 없고 스누라이프를 찾아봐도 ‘국립서울대 학생권리 선언 요구안’에 담길 내용들이나 학생총회 자체가 활발하게 의제화 되는 것 같지 않다. 이대로 학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학생총회가 말 그대로 망해버린다면, 학생사회는 길고 깊은 불신과 무력감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또는 학생총회가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점거’라는 행동전략을 취했을 때 그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작년 여름날의 무력했던 기억을 반복하는 결과만 낳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총학이 말하는 학생총회가, 점거가, 동맹휴업만이 주어진 유일한 길인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또 다시, 나는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결정일지라도 오는 목요일 아크로에 나갈 것이다. 현재 총회의 안건에 동의할 수 없고 점거만이 유일한 행동방안이 아니라 믿는 것이 나만의 소수 의견이라 할지라도 공개된 자리에서 내 의견을 표명할 것이다. 보다 확실하고 실효성 있는 전략을 요구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지 토론할 것이다. 사표가 될 것을 알면서도 총학 선거에서 반대를 던졌던 그 때처럼 나의 선택이 아크로를 건강하게 일구는 작은 초석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기억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이 자리에 적었던 기억이 난다. 답답함과 불편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무엇도 변화하지 않는다. 불만을 터뜨리고 바꿔달라 요구하는 것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다. 항상 변화는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두고 익명에 기대어 멀찍이서 그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만 하는 이들은 자신이 침묵하는 ‘다수’에 속해 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을 자격이 되는 것일까. 방점은 ‘침묵’에 있어야 한다. 일부는 이것이 어설픈 선동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천과 행동만이, 익명이 아니라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발화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나는 믿는다.

 아크로에 모였다고 해도 변화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는 다수로서 내가 옳다 자위하기보다 표현하는 소수가 되고자 한다. 비판적인 소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사고의 지평은 보다 넓어지고 학생사회가 나아갈 길이 더욱 옳은 쪽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에.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대학에서 경험한 민주주의가 아닌가 싶다. 오는 31일, 아크로에서 표현하는 소수를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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