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대학원
최근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급 및 환자에게의 전달을 민영화하자는 의견이 사회 일각에서 힘을 받고 있다. 실제로 영리병원의 설립이 정부정책차원에서 추진이 되고 있으며 현재의 공적 건강보험의 역할을 축소하고 민간보험의 영역을 넓히자는 의견도 산업계의 주도 아래 학계 일부, 이익단체, 정부 일각의 지지로 힘이 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와 문화, 경제, 의료제도에서 유사점이 많은 이웃 일본에서 사회발전 정도가 현재의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러한 논의가 사회갈등 차원에서 있었기에 우리의 최근의 이러한 주장이나 논의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민간역할 증대에 의한 의료제도 재구성 논의는 사실 복잡한 내용을 깔고 있다. 사회 형평이나 건강권의 차원, 사회 구성원 간의 정치역학의 차원, 이념적 차원 그리고 보건의료를 재화로서 조명하는 경제학적 시각에서도 논의를 통하여 해답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제각기 상당한 이론과 분석이 전제가 되어야 하기에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의 현시선호가설이나 최근에 각광받는 근거위주판단(evidence-based decision)은 비교적 쉽게 해답에 접근하게 한다. 예를 들어 민간주도 대 공공주도의 갈등을 겪은 일본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였느냐를 보면 그곳에 답이 있다는 논리이다. 사회발전이 우리보다 앞선 일본은 갈등의 와중에 공공주의 의료전달체계(공급-재원-전달-서비스접근을 총괄)를 선택하였다. 과학의 ‘네이처(Nature)’지에 버금가는 보건의료의 ‘랜싯(Lancet)’지는 2011년 9월호에 이러한 일본의 선택을 높이 평가하는 특별호를 발간하기도 했다.

 세계의 다른 사례들을 보자.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과 호주와 캐나다를 포함한 선진국 반열의 국가들은 보건의료전달체계에서 그동안 어떠한 선택을 하여 왔을까? 이들 선진국들은 대부분이 자본주의 국가들이며 사회발전이 두드러진 국가들로서, 이들의 과거의 선택이 보건의료 선진화를 갈망하는 우리가 찾고 있는 해답일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실패의 사례로 경제선진국이면서 국민건강보호 후진국인 미국이 있다. 마이클무어 감독의 ‘Sicko’라는 다큐 영화의 내용도,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하는 보건의료개혁도 우리가 구하는 해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민간시장기능에 보건의료를 내 맡긴 미국 보건의료체계의 아픈 현실을 직시하면 우리가 찾는 해답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이 된다.

 주요 국제기구 WHO와 세계은행의 개발도상국 보건의료 관련 정책지원에도 해답이 암시된다. 이들 국제기구들은 공공위주 보건의료전달체계를 자원배분의 기반으로 명확히 하고 있다. 한때 시장주의로 보건의료 전달체계를 일관하던 중국이 2007년 이후 공공위주로 급선회한 정책적 전환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경험이다. 중국과 함께 Emerging economy의 대표격인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도 비슷한 변화를 시도하며 이 변화를 국제기구들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

 보건의료제도가 갖는 경제 사회적, 분배적, 정치적, 그리고 건강적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각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내린 결론과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정책변화는 우리가 직면한 혼란스러움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의료부분의 이 모든 경험들은 사회주의의 승리도 아니고 보수주의의 쇠퇴도 아니며 오히려 시장원리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시장실패가 명확한 보건의료에 시장원리의 잣대를 적용하면 자원사용이 추구하는바 효율과 형평을 모두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제학원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바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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