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55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우리에게 ‘아버지’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지난 24일(목)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서울영상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제55회 독립영화 쇼케이스-아버지 없는 삶」이 열렸다. 문화·예술인들과 관객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해 2년 만에 재개관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돼 주목을 받은 이번 쇼케이스는 다큐멘터리 「아버지 없는 삶」의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사진)로 이뤄졌다.

 「아버지 없는 삶」은 한국인과의 결혼을 이유로 아버지와 의절했던 여성 마사코가 주인공이다. 다큐멘터리는 20년 만에 먼저 연락해온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마사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상영시간 내내 스크린에는 담담한 표정으로 여행하는 마사코의 침묵, 그 여정 속에서 비춰지는 한국과 일본의 정경만이 나타난다. 다큐멘터리 속 유일한 목소리인 내레이션은 각각 b, q, 감독 자신으로 분열돼 있다. 내레이션은 때때로 소설 「요코이야기」에 대해 설명하는 b와 마사코의 이야기를 전하는 q가 되기도 하고 감독의 입장이 돼 마사코의 표정과 일본의 정경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고 해석하기도 한다. 마사코, 정경, 내레이션 이 세가지 요소가 「아버지 없는 삶」의 전부다.

 이 다큐멘터리는 요코 카와시마 왓킨슨이 쓴 자전적 실화소설 「요코이야기」와 마사코의 여정을 겹쳐보이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요코이야기」는 한·일 전쟁을 배경으로 요코라는 일본여성이 함경북도 나남에서 고향 아오모리로 피난을 가는 여정에 관한 소설이다. 요코가 한국군에게 유린당해 순결을 잃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자칫 한국인이 가해자고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반일감정의 극대화 논란과 함께 국내에서 판매가 금지됐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소설 「요코이야기」가 불러온 사회적 논란을 노골적으로 조명하기보다 요코와 아버지에 관해 좇고 있다. 내레이션은 소설 속에서 요코가 아버지의 얘기를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일제강점기 고위간부로서 폐단을 저질렀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 품고 가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스크린 속 마사코는 오랜 세월 단절된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서도 그에게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일본의 거리를 거닌다. 이렇듯 반세기의 차이를 두고 모두 자신의 고국으로 향한 두 여성이지만 아버지를 향한 태도는 다르다. 요코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휘둘렀던 권력에 얼룩졌더라도 품고 싶은 존재였고, 마사코에게 아버지는 한국인과의 결혼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권위의 구속에서 벗어나 그녀를 더 당당해지게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영화상영 이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다큐 속에서 ‘아버지’란 단순히 생물학적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의 가치체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해 기성세대가 전유하는 권위적 가치체제를 드러내고 싶었다는 말이다. 김응수 감독은 “이제 이러한 아버지를 죽일 때가 온 것 같다”며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의 태도를 직접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화면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바라본 바다를 비추고 내레이션은 “그녀는 이제 바다가 지겹다”고 말한다. 이는 마사코가 그녀를 옥죄고 있던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의 것들에서 벗어났음을 드러내는 일언이 아니었을까. 이제 남은 것은 우리다.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혹시 우리는 그에게 얽매이고 있지는 않은가. 기성의 체계 속에 순응하는 자세를 버리고 자신의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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