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연재] 타자(他者)를 품은 묘역 ①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 반, 백마부대 앞에 내려 삼십분을 더 걸어가면 하나 둘 무덤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107, 이곳에 세상을 떠난 수만명의 사람들이 안치돼 있는 용미리 추모의 집이 있다. 주말이 되면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자 이곳을 찾는 유족들의 발길이 잦다(사진①, ②). 그러나 이곳에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가 하나 있다. 가족을 찾을 수 없는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무연고 추모의 집’이 바로 그곳이다. 무연고 추모의 집에는 3,600여구의 유골함이 혹시나 찾아올지도 모르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그들은 누구인가=2010년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1인 가구 수는 전체 가구의 24%를 차지하며 4인 가족의 수를 넘어섰다. 특히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수는 119만명에 육박한다. 홀로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주위의 무관심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짧게는 2-3일, 길게는 두 달이 지나서야 발견된다.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두 평 남짓한 반지하 방에서 49세의 남성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숨을 거두고 2주가 지나서야 발견된 그의 단칸방은 구토와 혈흔 자국으로 뒤범벅이 돼 있었고 그의 몸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이러한 고독사는 한해 천여건에 달한다.

편히 쉴 방 한 칸조차 없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도 있다. 전국의 노숙인·부랑인·행려병자의 수는 만4천명정도로 추정된다. 오랜 바깥생활로 면역력이 약해진 그들에겐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병조차 치명적이다. 길에서 목숨을 잃는 노숙인의 숫자만 한해 평균 310명이다. 경찰에 파악되지 않은 경우를 합하면 길에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이처럼 무연고 추모의 집에 안치된 사망자는 노숙인·부랑자·독거노인 등이 사망한 후 주위에서 바로 유가족을 찾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이 죽은 채 발견되면 해당 시·군·구청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 직계비속, 부모 외 직계존속, 형제·자매, 치료·보호기관장 순으로 연고자를 찾게 된다. 연고자를 찾지 못하면 이들은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된다.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그들의 마지막 길을 좇아본다=장례를 치러줄 가족조차 없는 무연고 사망자, 그들의 마지막 길은 어떨까? 홀로 살아가던 그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는지, 취재를 바탕으로 『대학신문』이 재구성해봤다.

서울시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노숙인 A씨는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무연고 시체 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관할구청인 중구청은 A씨의 인적사항과 사망발생상황을 공고하고 그의 연고자를 찾는다. 그러나 가정불화로 A씨가 집을 나간 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그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린 지 오래다. 간신히 A씨의 아들에게 연락이 닿았지만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다”며 “장례를 치를 형편이 되지 않아 시신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싸늘한 답변만을 듣게 된다. 그렇게 A씨는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사망확인 후 한달 내에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구청은 장례대행업체에 시신처리를 위탁한다. 장례대행업체는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은 40-50만원으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 별도의 빈소나 수의는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다. A씨는 생전에 입던 옷과 함께 헌 관에 눕혀진 채 봉고차에 실려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한다. 승화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 많은 울음소리 중 A씨를 위한 것은 없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A씨는 혼자였다.

뼛가루로 변한 A씨의 시신은 플라스틱 유골함에 담겨 파주시 용미리 추모의 집으로 향한다. 용미리 제1묘지 외딴 곳에 건물이 한 채 있다. 관리사무소로 쓰이다가 현재는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이 보관되고 있는 건물이다(사진③). 도서관 보존서고에나 있을법한 철제 선반 수십 개에 다른 무연고자의 유골함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추모의 집에서 만난 한 관리자는 “힘들게 살아오던 그들이 죽어서도 이런 곳에서 지내는 것은 우리도 안타깝다”면서도 “현재 지원되는 예산으로는 시설을 유지하는 것도 빠듯하다”고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추모의 집 한 구석에는 2002년에 안치된 유골함이 있었다. 이들은 곧 합동 봉분에 뿌려지게 된다. A씨도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가족을 기다리며 10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가족이 찾아오지 않은 채 10년이 지나면 A씨는 공동묘지에 합동 매장돼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애도하는 이 없는 고독한 죽음=매년 서울시에서만 260여명 이상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 중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유가족을 찾더라도 형편상의 이유를 들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밝혔다. 혹독한 한파가 찾아오는 해에는 사망자의 수가 더 늘어난다. 2008년 이후 노인요양시설, 노숙인 보호시설 등에 입소한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 무연고 사망자 통계에서 제외되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생을 홀로 외롭게 살아온 무연고 사망자들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혼자다.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삶의 끝을 맞이한다. 그러나 무연고 사망자들에게는 그럴 기회조차 끝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자기 몸 편히 뉘일 곳 하나 없이 살아온 그들에게는 죽어서도 편히 쉴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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