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집중되었던 애플과 삼성의 특허공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 단순한 치장 정도로 간주되었던 UI/UX(사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가 이제 기업의 핵심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많은 관심이 관련분야인 인간공학, 인지과학, 감성공학 등의 융합학문에 쏠리고 있다. 연구자로서 최근의 관심이 반가운 반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최근의 현상은 선진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한 후 이를 추격하려는 또 하나의 카피켓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사실 UI/UX의 기본은 인간 중심성(human centeredness)이고 이는 오랫동안 학계에서 주장하여 온 것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디자인에서 사용자중심성이 무시된 사례는 비일비재하여 도리어 다소 그렇지 않은 제품(애플의 제품들)이 나올 때 사람들이 더 감동하는 역설을 낳는다.

이번 특허소송의 결과도 인간중심의 UI/UX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 이와 같은 일이 생기는가? 바로 문제의 핵심인 인간측면(The Human Side of X)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공공건물은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설계되고 정책을 기획할 때도 여러가지 이유(시간과 예산 등 핑계)로 수용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정당은 당원의 니즈(Needs)와는 관계없이 운영되고,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 사업을 장기간 수행하면서도 제대로 된 사용자 반응 조사와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어 더 이상 이상하지도 않을 지경이다. 공청회는 형식적이고 설문조사는 원하는 답을 얻는 도구가 되고 있다. 확신 편향(Confirmation Bias)이 강한 사회는 겸손하지 않다. 해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TV 토론의 강성화법을 보면 더욱 그렇다. 10년전 TV 토론을 재방송하여 오늘 리뷰하여 본다면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대부분 참석자들의 말이 틀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나를, 혹은 문제의 해답을 잘 모른다고 가정하고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제도나 정책을 시행할 때 과연 국민과 이해 당사자들에게 맞는 것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를 검증하고 출발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아이디어성 정책을 시행하면 관련자는 실험대상이 되고, 반감과 부정적 태도만 고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 우리의 교육정책이 그렇지 않은가. 사용자 혁신의 개념은 이러한 오래된 공급자 중심적 프레임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진부화된 구체제(status quo)는 혁신의 역설에 고착되어 더 이상 혁신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시스템의 구성원, 사용자, 수혜자, 고객 같은 사회적 수용집단의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스템의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증거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작게는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디자인부터 크게는 정치시스템(중동의 민주혁명과 정치의 SNS화)에 이르기까지 사용자 혁신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의 중심에는 인간 중심성이 있고 이를 이해하는 것이 사용자 혁신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인간 중심성의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디테일의 중요성이다. 애플사의 여러 제품은 다른 제품과 기술과 기능적으로 차이가 없지만 사용해 보면 조그마한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고 이것이 사용자 경험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사용자 혁신의 시대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디테일의 힘이다. 이것을 무시하는 순간 우리는 역설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금번 특허 소송의 결과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직 사용자 혁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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