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더 나은 '우리'의 세상을 위해 ①


어느덧 대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고 정치의 계절을 맞은 사회는 떠들썩했다. 지난 방학동안 출판계는 정치 섹션의 서적들로 여느 때보다 활기를 띠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는 7월의 정치 분야 책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10배를 뛰어넘었다고 하니 가히 이번 하반기는 폴리틱셀러(Politics+Bestseller)의 전성기라 할 만하다. 특히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짚은 책이나 정치 체제에 대한 책, 정치 사상가들의 평론, 정치인들의 청사진을 담은 정책집 등 다양한 종류의 정치 관련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대학신문』에서는 개강호를 맞아 이 중 몇가지 책을 주제별로 선정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대변해줄 후보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60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심화되는 양극화와 편중된 권력구조 속에 유권자들은 낮은 투표 참여와 냉담한 정치적 무관심으로 반응할 뿐이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실제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위기론 앞에 민주주의의 정체성과 내부 문제점을 심도있게 다룬 『최초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내부의 적』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최초의 민주주의』에서 저자 폴 우드러프는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비유하며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초의 민주주의』의 서두는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믿는 것들이 정말 민주주의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다수결의 원칙’ 혹은 ‘투표’를 통해 사안들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정도로 답한다. 하지만 저자는 “다수결의 원칙과 투표 그 자체는 민주주의의 ‘대역’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꼽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결정 사안들과 후보들이 어떤 선택 절차를 거쳐 투표에 회부됐는가다. 20세기 독재의 역사에서 나타난 투표와 다수결의 원칙은 평등과 자발적인 ‘민주’의 탈을 쓴 ‘강요’의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 ‘조화’, ‘법에 따른 통치’ 등 일곱가지 이념들로 최초의 민주주의를 분석했다. 아테네의 시민권 제도를 강화한 페리클레스의 일화를 통해 저자는 여러 이념 중에서도 특히 ‘조화’를 강조한다. 그리스 전역에서 제국 건설이라는 공동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인과 비(非)아테네인을 까다롭게 구분해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핵심 권력의 중심이 아테네인들에게 향했다. 시민권으로 인한 분쟁으로 그리스 내 ‘조화’에 금이 가면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민권 문제를 계기로 아테네의 시민과 비시민 간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고 아테네는 내전에 휩싸였다. 사소한 불화의 시작이 200년동안 유지됐던 아테네 민주주의를 하루아침에 실패로 이끈 것이다. “조화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저자는 “조화를 토대로 이뤄진 민주주의가 결국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 체제를 만든다”며 조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오랫동안 민주주의 체계를 보완해나갔던 아테네도 결국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다. 우리 역시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대역에 이끌린 채 길을 잃고 해맬 것”이라고 경고하며 “우리가 제대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발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전한다.

고대 민주주의에 담긴 이상과 이념들을 제시한 『최초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적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라고 진단했다면 『민주주의 내부의 적』에서는 민주주의의 적이 ‘내부적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내부의 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민주주의는 다소 역설적이다.
 

츠베탕 토도로프 저| 김지현 역| 반비| 224쪽| 1만4천원

 

『민주주의 내부의 적』의 저자 츠베탕 토도로프는 유럽에서 나타난 포퓰리즘의 부상과 외국인 혐오 현상을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으로 규정하며 이 두 현상의 심각성에 초점을 맞춘다. 냉전 이후 급부상한 포퓰리즘은 다수의 관심사를 확인한 뒤 그들을 현혹하기 위해 관심은 쉽게 끌지만 실행은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정책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의 포퓰리스트들과 대중들은 자신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외국인’을 향해 투사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논쟁을 시작하며 새로운 문화 정체성을 습득해 나가는 듯했으나 결국 현실 문제의 원인을 외국인 책임으로 돌리는 현상을 더욱 확고히 하기만 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 다른 나라들 역시 다문화주의를 정부가 앞장서 배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허황된 해결방안만을 제시하는 포퓰리즘과 사회의 다원성을 무시하는 외국인 혐오는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목표를 훼손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듯 ‘대중영합주의’와 ‘다름에 대한 배격’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와 새로 등장한 '미디어 권력'이라는 내적 원인에서 기인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이 원활히 작동하는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며 부의 축적과 경제 성장만을 중요시한다. 경쟁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들은 자연스레 사회에서 낙오되며 고착화되는 계급구조를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이다. 소수에 의해 휘둘리는, 표면상의 민주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물든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새로 등장한 ‘미디어 권력’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 거대언론으로 대표되는 미디어가 수익성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며 권력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권력을 가진 것은 민중이 아닌 돈”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우리는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두 책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가 단지 ‘위기’에만 처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위기’라는 단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위기에 처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 실천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알아야 한다고 전한다.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하듯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당연시 여기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현재까지 수천년동안 민주주의는 많은 이들에게 이상향이었다. 민주주의는 역경과 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버텨왔다. 그 이유는 아마 아직 피지 않은 민주주의의 꽃, 그 생명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가 자각해야 할 점은 민주주의의 결말을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말이 우리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근 스페인과 그리스 등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분노한 젊은이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라고 외친다. 이 외침 속에 우리의 민주주의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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