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세계유산 등재 이후 17년 지났지만 세계유산과 관련한 유지·보존지침 여전히 미비해…
보다 세부적인 방안 담은 법령 제정해야

1972년 11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협약(세계유산협약)’이 체결됐다. ‘인류전체의 세계유산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 문화·자연유산을 보편적 차원에서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로부터 40년, 지난달 26일-31일까지 열린 ‘제1회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리자 및 NGO 아시아-태평양 포럼’에서는 ‘지속가능한 세계유산 보존’을 위해 정부와 지역사회의 협조를 구하는 한편 국가별 상황에 알맞은 유지 방안을 강구했다. 또한 ‘지속가능한 세계유산 보존’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보존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1995년 최초로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이래, 문화유산 9개와 자연유산 1개 총 10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첫 세계유산 등재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대학신문』에서는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세계유산의 유지·보존 상태를 짚고 세계유산특별법의 세부지침과 관련한 방안을 모색해봤다.

막연한 관리 체계 속 갈피 잃은 세계유산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보호와 관리를 위해 적절한 체계를 갖추기를 당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보존·관리는 지역별로 제각각이다. 세계유산을 전반적으로 보존 및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국가종합계획이나 법령이 수립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구역이 개발돼 문화재 훼손 문제가 발생한 지역이 있는 한편, 과도한 문화재 보존으로 거주민들의 주거권 및 재산권이 침해당한 지역도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세계유산의 근거리에 개발을 진행할 경우 문화재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 일대(1995년 지정)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릉이 위치한 남한강 지역에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여주보가 설치됐다. 이 여주보로 인해 수위가 증가하고 안개가 상습적으로 끼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문화재 훼손에 관련한 우려가 제기됐다. 잦은 안개는 왕릉의 목조 건축물과 석물을 부식시킬 위험이 높으며, 증가한 수위는 이 일대 약한 지반을 침식해 봉분을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혜숙 전 의원은 2010년 이뤄진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의 보존보다 국토 개발을 우선시하는 위험한 생각 때문에 여러 문화재들이 현재 훼손위기에 처해있다”며 “문화유산을 개발할 때에는 면밀한 조사를 수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윤재학 제공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40기 또한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지자체 때문에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 성북구의 정릉과 의릉은 각각 정릉 6구역, 이문 3-1구역에서 진행 중인 재건축으로 인해 주변이 아파트로 둘러싸일 뻔했다. ‘정릉보존회’ 권영일 대표는 “유네스코가 문화재청에 정릉의 경관변경에 의문을 표한 이후 정릉의 ‘현상변경심의건’은 당분간 계류 중”이라면서도 “하지만 9월 5일에 사업자에 대한 항소심이 있을 예정이라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덧붙였다.

 그런가하면 문화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 보존 정책이 과도하게 우선시돼 지역주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기 화성(1997년 지정)의 태안 3지구 택지개발현장은 문화재 보존과 재개발 사이의 공방 속에 15년째 공사가 진행됐다가 중지하기를 반복하면서 흉물로 남게됐다. 이 공사현장의 95%는 세계유산 때문에 설정된 보호구역과 중첩된다.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잘못 선정된 태안 3지구가 사실은 문화재보존영역이었던 탓이다. 경기문화연대 진선관 사무국장은 “문화유산에 관한 정책지원방향이 잡히지 않아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도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올해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지 15년째가 되는 수원 화성(1997년 지정)은 세계유산지정 이후 지역주민이 끊임없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수원 화성 내부에 위치한 지동 일대 건축물의 반 이상이 노후화돼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경기도 전반에 택지개발 열풍이 불었지만 이 일대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개발이 제한되면서 급속도로 낙후됐다. 현재 허름한 주택과 술집이 모여 있는 이 지역의 골목 일대는 싼 사글세방을 찾아온 소외계층과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고 있다.

세계유산의 효과적인 유지 및 보존을 위해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세계유산의 유지 및 보존과 관련된 법령이 미비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총 104조로 이뤄진 문화재보호법 중 세계유산이 언급된 조항은 제19조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재보호법 제19조 3항에서 세계유산을 ‘국가지정문화재에 준하여 유지·관리 및 지원’하도록 지정하고 있을 뿐, 세부적인 관리지침은 없는 것이다. 더욱이 현행 국가지정문화재 유지관리지침은 문화재 보존구역의 설정을 ‘지자체마다 다르게 적용’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기 문화재 관리·보존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문화재청 국제교류과 최재혁 사무관은 “문화재보호법에 준해 보존하고는 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연계정도에 따라 세계유산의 관리수준은 천차만별”이라며 세계유산관련 상세지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남경필 국회의원은 “세계유산특별법이 통과되면 세계유산과 더불어 잠재목록의 유산도 국가로부터 학술연구 등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현재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세계유산의 보존’을 위해 ‘세계유산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추세다. 세계유산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해 국제협약 수준에서 보다 전문적·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다. 국가 차원에서의 법령지정도 활발하다. 2007년부터 세계유산 관리에 착수한 중국정부는 세계문화유산보호관리판법과 세계유산 모니터링 및 조사를 위한 행정지침, 세계유산 관리 자문을 위한 원칙 등을 제정해 지방자치단체의 세계유산 보호관리 업무를 지도하고 있다. 특히 2006년 공포된 세계문화유산보호관리판 법에서는 중국의 문화재청 격인 국가문물국이 세계유산을 관리·감사하게 하고, 현급 지방정부는 세계유산을 위한 재정을 예산에 포함시키도록 해 세계유산의체계적 관리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의 시라카와 누에마을은 지방자치단체가 자발적으로 세계유산 보존지침을 마련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의 자연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주민헌장’을 만들어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권을 스스로 제약했다. 세계유산과 관련된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과 관련된 지침인 문화재보호법 제19조는 총3항으로 이뤄져있다. 그마저도 1항과 2항은 국가 문화재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고 홍보할 의무를 명시하는 선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등재 이후다. 세계유산의 유지·관리와 관련한 과제가 선결되지 않는다면 세계유산이 오래도록 지역사회에 공존하며 보존되기 어렵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김지현 세계문화유산 담당은 “개발이 활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보존과 개발의 균형점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문화역사 경관보존의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세계유산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유산의 관리가 보다 체계적인 법령 마련을 토대로 주위경관의 보존과 지역사회와의 공존에 중점을 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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