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더 나은 '우리'의 세상을 위해 ②


어느덧 대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고 정치의 계절을 맞은 사회는 떠들썩했다. 지난 방학동안 출판계는 정치 섹션의 서적들로 여느 때보다 활기를 띠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는 7월의 정치 분야 책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10배를 뛰어넘었다고 하니 가히 이번 하반기는 폴리틱셀러(Politics+Bestseller)의 전성기라 할 만하다. 특히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짚은 책이나 정치 체제에 대한 책, 정치 사상가들의 평론, 정치인들의 청사진을 담은 정책집 등 다양한 종류의 정치 관련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대학신문』에서는 개강호를 맞아 이 중 몇가지 책을 주제별로 선정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윈스턴 처칠은 “20대 때 진보가 아니면 심장(heart)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처칠이 말한 ‘진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처칠이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세계사를 되돌아볼 때, 아마 처칠이 말한 진보는 공산주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20세기 초부터 공산주의는 세계 전역을 강타하며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러나 처칠은 뒤이어 “40대에 보수가 아니면 정신(mind)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과연 처칠의 말은 전적으로 타당한가? 최근 발간된 『코뮤니스트』가 해답의 실마리를 품고 있다. 이 책은 공산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왔으며 어떠한 이유에서 수명을 다한 것인지 공산주의의 역사 및 이를 둘러싼 논쟁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로버트 서비스 저| 김남섭 역| 교양인| 824쪽| 3만6천원

 

 

 

 

 

『코뮤니스트』의 저자 로버트 서비스는 러시아 근현대사의 권위자이자 혁명사 연구의 대가로, 특히 ‘소비에트 연방’으로 대표돼 온 공산주의에 대해 연구해 온 학자다. “전 세계의 공산주의를 개괄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는 공산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시작으로 초기의 공산주의가 어떤 식으로 실험됐는지 대해 서술한다. 뒤이어 그는 본격적으로 공산주의가 실현되기 시작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결국 몰락을 맞게 되는 때까지를 차례로 다루고 있다. 특히 공산주의가 실제로 시행됐던 소비에트 연방 및 동유럽과 중국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운동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서유럽이나 미국 등지의 공산주의 운동에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 설명한 것은 돋보이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저자가 공산주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저자는 공산주의 국가의 질서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의 간섭에 대해 염증을 느끼도록 했던 것과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을 공산주의의 실패 사례로 들었다.

이는 공산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공산주의 이념에 관한 논의로 확장될 수 있는데, 『폭력에서 전체주의로』는 이를 바라보는 두 철학자 카뮈와 사르트르의 사상을 철학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저자 에릭 베르네르는 카뮈와 사르트르를 병렬적으로 다루며 두 사상가의 생각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는 한편 종합적인 분석 역시 꾀하고 있다.
 

에릭 베르네르 저| 변광배 역| 그린비| 288쪽| 1만9천원

 

1940-50년대 프랑스 철학을 논할 때 빼놓지 않고 함께 거론되는 프랑스의 철학자 카뮈와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들로 두 사람의 사상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했다. 하지만 둘을 갈라놓은 것은 각자의 ‘공산주의’에 대한 상반되는 태도였다.

카뮈는 공산주의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는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거의 동일시했다. 둘 다 전체주의적 성격을 가지는 데다가, 공산주의와 파시즘 모두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한 현재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반대할 이유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카뮈가 그의 저서 『반항하는 인간』에서 '논리에 의한 범죄를 시대의 현실로 검증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것을 인용하며 카뮈에게 공산주의는 바로 그 ‘검토돼야 할 논리적 범죄’를 낳을 수 있는 폭력적 이데올로기로 인식됐다고 전한다.

카뮈는 인간의 참다운 풍요로움이 ‘지금-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카뮈는 공산주의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혁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반대한다. 카뮈에게 현재야말로 유일한 진리인데 혁명은 바로 이 현재를 추상화해 미래에 대해 환상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카뮈는 “혁명에서 중요한 것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며 기다리는 동안 무고한 자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간다”며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한다.

반면 사르트르는 ‘지금-여기’를 회피한다. 사르트르적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미래다. 그는 ‘지금-여기’를 미래와 결부시키려 노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에 대해, 특히 ‘미래의 유토피아를 가져다주기 위해 현재에 자행되는 공산주의의 폭력’에 대하여 찬성한다. 심지어 그는 공산주의에서 언급되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당의 독재’를 넘어 ‘당에 대한 지도자의 독재’까지도 정당화한다.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다양한 갈등으로 인해 서로 대립하고 있기에 그들이 단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제3자가 개입하는 공산주의의 전체주의를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사르트르는 ‘진보적 폭력’ 개념을 주장한다. “공산주의는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려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운동인 것 같다”는 그의 언급은 공산주의가 절대적 기준이며 역사 속으로 진입하는 나침반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르트르는 ‘진보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는 하나뿐인 나라’라며 공산주의가 실험됐던 소련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치열하고 또 첨예했던 둘의 논쟁은 정치적인 관점에선 이미 종료됐다.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됐으며 사르트르는 1968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역사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카뮈에게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철학적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역사의 진보적인 측면이 인간의 비참함을 어떤 면에서 제거할 수 있는지”와 같은 철학적인 의문들은 공산주의가 거의 폐기됐다고 볼 수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가지며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는 수명을 다한 이론이며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책 『코뮤니스트』와 『폭력에서 전체주의로』는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 등으로 자본주의를 대체 혹은 보완할 수 있는 진보적 역사의 방법론이 새롭게 필요한 지금, 여전히 공산주의를 둘러싸고 펼쳐졌던 여러 논쟁들이 그 당시와 비슷한 방식으로 현재 진행형임을 시사하고 있다. 비록 공산주의는 시대의 유물이 됐지만 이 유물과 관련돼 펼쳐졌던 근본적인 논쟁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이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지금-여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카뮈는 존재 이유나 존재 가치 등의 본질 이전에 내가 ‘지금-여기’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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