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더 나은 '우리'의 세상을 위해 ③


어느덧 대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고 정치의 계절을 맞은 사회는 떠들썩했다. 지난 방학동안 출판계는 정치 섹션의 서적들로 여느 때보다 활기를 띠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는 7월의 정치 분야 책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10배를 뛰어넘었다고 하니 가히 이번 하반기는 폴리틱셀러(Politics+Bestseller)의 전성기라 할 만하다. 특히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짚은 책이나 정치 체제에 대한 책, 정치 사상가들의 평론, 정치인들의 청사진을 담은 정책집 등 다양한 종류의 정치 관련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대학신문』에서는 개강호를 맞아 이 중 몇가지 책을 주제별로 선정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한 경제연구원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계층상승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려 98%가 ‘앞으로 계층상승이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그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양극화의 진행, 좋은 일자리 부족, 기회의 공정성 부족과 같은 답들이 나왔다. 이러한 계층상승 욕구에 대한 좌절감을 반영이라도 하듯 ‘묻지마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지금,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던 한국사회 내부의 환부가 곪아 터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 환부를 진찰하는 책들이 출시돼 시선을 끈다. 바로 최근 출판된 책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소수의견』이다. 두 책은 ‘자본이 모든 권력을 차지한다’는 극단적인 시장 논리에 사로잡혀 개개인의 인권이 짓밟히는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다룬다. 특히 이 책들은 경제·사회적 기반을 가진 기득권자들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권익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를 듣는다면, 『소수의견』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비판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의 공동저자인 『한겨레신문』의 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기자는 언제부터인가 신문의 의견면에 신문사 논설위원, 저명인사 같은 이들의 칼럼만이 실린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사회 각층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지면조차 몇몇 소수의 의견만을 다루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나 현실에 대한 의견을 표현할 엄두조차 못 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 후 그들의 현실을 「한겨레신문」 의견면의 ‘낮은 목소리’라는 새 코너에 싣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들이 하나 둘 모여 책으로 출판된 것이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다.
 

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저| 레디셋고| 304쪽| 1만5천원

 

 

 

 

 

이 책에는 생존을 위해 비인간적인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 사상이나 의식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사례가 낱낱이 제시돼있다.

이른 새벽 5톤 트럭을 타는 이모씨의 직업은 정화노동자다. 말이 ‘정화노동자’지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들은 흔히 ‘똥퍼’라고 불린다. 10kg이 넘는 호스를 매고 간신히 정화조의 뚜껑을 열면 말 그대로 노란 가스가 나온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독하지만 경직된 분뇨를 저어가며 정화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힘든 작업을 끝마쳐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냄새가 난다며 손조차 대이기 싫어 돈을 던져서 주는 주민들의 냉대다.

한편 간신히 화장품 판매원의 매니저가 된 서모씨는 임신의 기쁨도 잠시, 육아 휴직은 사표를 내는 것과 같은 냉혹한 현실에 만삭의 몸을 끌고 종일 화장품 판매를 위해 서 있어야 했다. 게다가 임신 때문에 아픈 내색을 하면 “아이는 혼자만 낳나?”며 주변의 곱지 못한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이러한 서씨의 사례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출산 장려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에는 이 밖에도 사회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이 담겨있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개별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는 한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책의 부제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 사회의 아찔함을 읽다’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간단명료하다. 현실을 반영한 정책 입안이나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캠페인을 통해 구제의 사각지대가 없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웃는 얼굴로만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서비스의 수준을 제시하는 감정 노동 가이드라인을 기업이 자체적으로 정하고 감정 노동 해소 프로그램을 만드는 식이다.

이에 비해 『소수의견』은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가 맞물려 발생하는 한국사회의 폐단들에 대한 직접적인 쓴소리를 담아냈다. 경쟁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0대를 다뤘던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은 『소수의견』에서는 그 대상을 대한민국의 국민 일반으로 확대했다. 이 책은 다년간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와 시사잡지 등에 게재했던 칼럼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책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책 내용이 비록 지금은 '소수의견'일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내일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촌평을 시작한다.
 

박권일 저| 자음과모음| 288쪽| 1만3천5백원

 

저자 박권일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향수에 젖어 그 시기를 최고의 태평성대라 일컫는 일부 사람들의 관점을 비판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문제는 최소한 두 개, 또는 세 개 이상의 정권을 관통하는 어떤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노무현 정권 시기 빈번히 발생했던 노동자 탄압 등을 기억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최근 폭발적인 SNS 열풍에 대해서도 그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모든 이들이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며 SNS을 찬양하고 있지만 저자는 이 또한 “트위터의 빅 마우스들은 과장된 수사를 남발하며 알량한 권력을 과시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처럼 실속 없는 SNS의 무의미한 정보들과 의견들을 비판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SNS가 ‘소셜 선거’를 이끌어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주장 또한 실질적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 박권일은 현사회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한국 현실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비평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모두가 함께 먹고사는 문제야말로 가장 공적인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사회의 약자들만이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함께 사회를 바꿔나가자고 말한다.

조지 오웰의 『1984년』 속 빅 브라더와는 다르게 ‘오늘날의 빅 브라더’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애초에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데 집중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빅 브라더들에 대항하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더 이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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