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9월 8일, 원자력사업계의 주도적 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Electric Corp.)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업계와 법조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27개 전력 회사들과 체결한 우라늄 고정가격 장기공급계약은 우라늄 산출국 카르텔이 새로 출현해 우라늄 원자재 값이 10배 이상 폭등했으므로 더 이상 효력이 없다. 따라서 공급하기로 계약한 7천만 파운드(3,150만kg)의 우라늄을 애초의 가격으로는 공급하지 않겠다. 이러한 사태는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상상도 못했으며, 명시된 단가로 공급을 계속하면 20억불(지금 화폐가치로 50억불 이상)의 손실을 입게 되니 소위 ‘doctrine of commercial impracticability’법 이론에 따라 계약은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

27개 전력회사들은 발끈하여 “원래의 계약은 유효하며 웨스팅하우스는 원 계약에 명시된 가격으로 공급하라”며 해당관할 법원들에 소송을 제기했고, 1978년 10월 27일 그 중 한 법원(미국 버지니아주 동부지방법원)이 해당 전력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계약 당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해 원 계약을 이행할 때 일방이 심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할지라도, 계약이행을 중단시킬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라고 법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해당 판사가 최종판결 대신 양측의 협상을 종용한 것이다. 소송이 진행된 다른 법원의 판사들도 “법적 판결보다 큰 그림을 보며 협상하라”고 양측을, 특히 27개 전력회사들 측을 압박하였다. 논리는 “만약 웨스팅하우스가 해당계약이행에 따른 재무적 부담(대략 2조원으로 추정)을 견디지 못해 파산한다면 실질적으로 당신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냐? 애초에 공급가를 고정한 것도 신기루이며,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하면 웨스팅하우스가 지어준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 사라져 버릴 터인데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담당판사는 협상 테이블에 양측변호사 대신 27개 회사들의 CEO들을 나오게 하였다. 결과는 신속하고 원만한 타협이었다. 법적으로 승자인 27개 전력회사 CEO들은 법적 권리 주장의 차원을 넘어선 실리(実利)상생의 큰 비전을 바탕으로 계약상대인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하지 않고 경영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인상을 허용하였다. 자신들이 경영을 지속할 수 있는 관점에서 감당할 만한 수준의 우라늄 매입가를 반영해 양보와 타협을 한 것이다.

70년대 원자력산업계, 법조계를 흔든 이 사례에서 우리는 우리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갈등·분규에 대한 지혜로운 접근법을 배울 수 있다. 법적인 권리·의무에 머무르지 않고, 주관적 옳고 그름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생존, 발전, 번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옳은지, 목적에 바탕을 둔 접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의 우위에 바탕을 둔 접근을 하여 소탐대실하고 관계를 파탄시키며 미래의 적을 만들어내어 자기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옳고 그름, 힘의 우열을 넘어서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미운 상대방, 억지 부리는 상대방, 거친 상대방도 내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적, 오늘의 갈등상대를 원수로 보지 않고 미래 가치 창출을 위해 필요한 존재,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인내와 끈기, 애정으로 오늘의 적을 내일의 귀한 동지로 바꿀 수 있는 대인관계기술과 리더십을 갖춰가야 한다. 우리사회 그리고 지구촌의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김철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책임교수
경영학과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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