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연재]타자(他者)를 품은 묘역 ②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일찍이 구상 시인은 「초토의 시8-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시를 통해 적군 묘지를 바라보면서 느낀 현실에 대한 통한과 슬픔의 정서를 노래한 바 있다. 시인이 회한을 느끼며 바라봤던 풍경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대학신문』은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채 한맺힌 과거 속에 머물러있는 '북한군 중국군 묘지'를 찾아가봤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라는 주소 외에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던 묘지는 네비게이션에도 표시되지 않는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유로를 타고 오십여분, 파주와 연천을 잇는 도로의 중간에 산55번지가 있었지만 정작 우리가 찾는 장소는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마침내 37번 국도의 중간에 있는 비포장 갈림길 사이로 흰 막대기가 무수히 꽂혀 있는 산등성이가 나타났다. 바로 ‘북한군 중국군 묘지’다(사진②).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흙길을 걸어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묘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무덤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벌초를 언제 했는지 모르게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고 꽃병을 놓을 돌판 하나 없다. 묘비는 각목에 흰 페인트칠을 한 채 꽂아놓은 것이 전부이며, 그마저도 신원을 알 수 없어 ‘무명인’이라는 도장만이 무심히 박혀있다. 거친 비바람에 쓰러진 채 방치된 묘비도 있고 밑둥이 썩은 것을 다시 꽂아놔 다른 묘비들보다 키가 작은 것들도 적지 않다(사진③).

이곳은 제네바협정 정신을 존중하는 취지에 따라 한국전쟁 이후 전국에 흩어져 있던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를 모아 1996년 7월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교전 중 사망한 유해는 피아를 불문하고 존중하며 묘지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된 제네바 협정 추가 의정서 34조의 방침을 준수하기 위함이다. 이같은 인도주의적 관점에 따라 ‘적군 묘지’로 불리던 이곳은 ‘북괴군-중공군 묘지’를 거쳐 현재는 ‘북한군 중국군 묘지’로 명칭이 변경됐다.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현재 이 묘지에는 북한군 유해 727구와 중국군 유해 329구 등 모두 1,056구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무덤의 주인이 발굴된 곳은 낙동강, 다부동 전투지역, 횡성지구 등 대부분 한국전쟁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다. 거의 모든 유골이 신원 확인에 실패해 이름조차 없다. 지난 2000년 국방부에서 유해발굴감식단을 설치해 발굴사업을 시작한 뒤로 발굴이 계속 이뤄져 발굴 유해는 매년 평균 80구 이상 증가하고 있다. 제1묘지에 봉분이 가득 들어차면서 마주 보는 산에 제2묘를 조성해 현재 면적은 6099㎡에 이르고 있다. 제2묘는 계속해서 유해들이 발굴될 것에 대비해 봉분을 기존보다 더 작게 만들었고 발굴과정 중 분리가 어려운 유해는 20구씩 한데 묻기도 했다. 고향의 방향도 고려해 일반적인 무덤의 위치와는 달리 적군묘지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묘지 벌초의 경우 주변에 위치한 부대에서 맡아 1년에 한번씩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유해뿐만 아니라 무장공비 등 대남공작원도 묻혀 있다. 68년 1·21 사태(청와대 기습사건) 30명, 87년 대한항공 KAL기 폭파사건 1명(사진①), 98년 반잠수정 침투사건 6명 등 비정규전 사망자들도 적군묘지 조성 이후 이장된 것이다. 특히 이중 몇 구는 이름과 계급이 뚜렷이 새겨져 있어 최근까지 계속된 남북 갈등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북한 측은 1·21 사태, 무장공비 침투 등의 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유골 송환에 대한 한국 측 요청을 무시하고 있는 상태다.

부지 선정과 관리를 둘러싸고 갈등이 이는 등 적군묘지는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곳은 정부 소유의 땅 중 임진강에서 거리가 5km에 불과해 북한과 가깝고 격전지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 선정됐다. 그러나 적성면에서 나고 자랐다는 마을주민 김모(75)씨는 “부지 선정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등 잡음이 많았다”며 “공동묘지인데다 우리와 싸웠던 적군의 무덤이니 그 반발이 더 심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또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제3땅굴 등 국방 안보 지역을 많이 방문하기 시작하자 국방부와 경기도는 “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관리가 필요하다”며 시설개선 사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적군묘지를 관광지화하려 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둘러싸고 국방부가 관광지화가 아닌 적군 유해 관리 차원의 시설개선이라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방부 북한정책과 문상균 과장은 “이후 경기도청과 협력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시설개선 사업은 무산된 채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묻힌 이들은 유공자로 인정돼 현충원에 경건히 안장된 아군의 묘지와 사뭇 대비된다. 적군의 유해는 적임이 판명된 순간 유전자 감식원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 파주 적군묘지로 곧장 안치된다. 조국으로부터 외면받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낯선 땅의 구석진 자리에 쓸쓸히 누워있는 이들은 이데올로기의 대립 가운데 희생된 전쟁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구상 시인의 시에서처럼 과연 ‘죽음은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일까.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풀만 무성히 자란 적군 묘지에는 적막만이 가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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