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에 관한 불편한 진실
무상의료에 관한 불편한 진실
  • 대학신문
  • 승인 2012.09.09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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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여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런던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이채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를 형상화해 간호사들이 병상에 누운 어린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공연한 것이다. ‘경이로운 섬나라’를 주제로 한 개막식 행사에 내세울 정도로 NHS의 어떤 모습이 경이롭다고 여겼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세금을 재원으로 한 무상의료제도를 60년 이상 유지해온 것에 대한 경이로움이었으리라. 언제나 부족한 재원 탓에 수술을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기도 했고, 그래서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관리운영체계와 조직을 수없이 뜯어 고쳐왔지만, 모든 국민이 조세에 근거한 무상의료의 혜택을 누리게 한다는 기본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의료에 관한 한 가격이 아닌, 의료적 필요에 의한 자원배분 원칙을 고수해 왔던 것이다.

3개월여 앞으로 대선이 다가왔다. 국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각 정당이 쏟아내는 많은 정책들 중 의료보장 확대에 대한 공약도 포함돼 있다. 수많은 정책들 중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뤄질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인지라 가볍게 여길 사안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의료보장 수준은 전체 의료비의 62-3% 정도로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낮은 수준이다. 가족이 중병에라도 걸릴 경우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구가 아직도 적잖이 있을 정도로 건강보험의 재정적 보호기능이 취약하다. 따라서 의료보장 수준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에 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당이나 동의하는 바이리라.

무상의료가 가능한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돈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는 없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심정적 동의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선거와 맞물려 과도한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상의료 주장에 이념적 공세를 펼치는 진영 역시 의료보장 확대를 약속하고 있기에 큰 방향에선 별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무상의료 제공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에 많은 관심이 모아진다. 보험료를 좀 더 내더라도 의료보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도 있고 세금 폭탄을 우려하는 이도 있다. 치료비 걱정 없는 건강보험제도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이를 위해 재원조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의료비 지출관리다. 지출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재원조달을 하더라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지출관리의 핵심은 의료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진료비 지불방식이다. 의료공급자가 제공한 서비스 양에 비례해서 보상하는 현행 행위당수가제(fee-for-service)는 의료비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분화된 의료행위 하나하나에 수가를 지불하기 때문인데, 더 많은 서비스 제공의 경제적 유인을 줄이려면 지불 단위를 더 포괄적으로 묶어야 한다. 얼마 전 정부와 의료계간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포괄수가제나 연간 지불할 진료비 총액을 협상 후 계약하는 총액계약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자유방임적 의료제도를 운영해온 미국에서도 행위당수가제의 비용증가적 문제 때문에, 의료공급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료비 지불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무상의료와 같이 득표에 영향을 미칠 정책 발표는 앞을 다투면서도 진료비 지불방식 변경과 같은 개혁 정책에는 정당들이 짐짓 무관심한 듯하다. 한 표가 아쉬운 마당에 의료공급자들의 반대를 불러올 정책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의료보장 확대 공약이 실현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병원비 부담이 줄어들겠지만, 지출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상의료 때문에 세금폭탄을 맞는 것이 아니라 줄줄 새는 진료비 때문에 세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 이것을 말하는 이가 없는 것이 오늘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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