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굴곡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 확립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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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신문
  • 승인 2012.09.09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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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냉전 종식 후 일본의 민족 정체성 위기 타파책으로 이용돼
한·일 양국, 단순한 인도주의·민족주의적 접근 아닌 식민지 역사 탈피에 힘써야

지난 6일(목) 종합교육연구동(220동)에서 여성연구소 집담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과 탈식민주의’(사진)가 열렸다. 이는 최근 ‘포스트 냉전 시대 비서구 아시아 여성 인권의 역사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다섯번째 집담회로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인도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 냉전시대의 민족 정체성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위안부 관련 담론들과 차별화된 논의가 진행됐다.

일본군 위안부란 일제 말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도중 일본군 위안소로 연행돼 강제로 성 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지칭한다. 위안부 강제 동원 인정을 둘러싼 역사 분쟁은 독도 영유권 문제와 함께 한·일 양국의 주요한 갈등 쟁점이었다.

한·일 양국이 위안부에 대해 첨예한 의견차를 보이자 1993년 일본은 고우노(河野) 담화를 통해 위안부에 대한 군 관여, 강제성 및 인권 침해를 인정했다. 뒤이어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의 마음을 나타내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며 한·일협정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이 문제를 법적으로는 1965년 한·일협정, 인도적으로는 1995년에 조성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국민기금*)으로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여전히 일본에는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극우 정치인들이 정계에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이에 관해 이번 집담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어떠한 이유에서 법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인지와 일본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일본 내 지식인들의 견해를 분석했다.
 



이번 집담회의 발제를 맡은 김부자 교수(일본 동경외대 종합국제학연구원)는 젠더(Gender)사 및 식민지조선 교육사를 연구한 재일교포 2세로서,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바우넷 재팬’이라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역사인식의 ‘탈식민지화’ 및 ‘탈냉전화’가 양국 사회에서 진전됐는가”하는 의문을 던진 뒤 탈식민주의와 관련해 일본의 법적 책임 문제를 거론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한·일협정과 국민기금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나 한국 측은 법적으로나 인도적으로나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본 정부는 1991년 시베리아 억류 일본인과 관련된 일·소 공동 선언이 소련에 대한 일본인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의 일·소 공동 선언에 대한 입장의 논리를 적용하면 한·일협정의 규정 역시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식민지 지배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국민기금에서 지급되는 위로금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라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인도적 해결이라고 주장하는 국민기금에 대해 김 교수는 “국민기금은 ‘존엄성의 회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국제 사회는 국민기금을 사죄로써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국민기금의 평가에 대해 와다 하루키, 우에노 치즈코 등의 담론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이었던 와다 하루키의 담론이 자기 변혁에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민기금 창설 후 전무 이사를 역임했던 하루키는 국민기금의 조성과 설립 취지를 “일·한간의 화해 조약으로서 일본 정부와 국민이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가져온 손해와 피해를 반성·사죄하는 것, 그 조건 하에 양 국민이 서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 화해를 추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김 교수에 따르면 결국 하루키는 자국 사회의 식민지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지지를 보낸 일본 국민들도 국민기금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며 “일본 내에서 사죄파의 분열과 한·일간의 대립이 일본 우파의 대두로 이어졌다”고 언급한다.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일본의 대다수 주류 페미니스트와 달리 예외적으로 위안부 문제나 국민기금에 대해 발언해왔던 주류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에 대해 김 교수는 “우에노는 ‘국가는 개인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그는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역사 심판’이며 이 문제는 한국 내셔널리즘을 넘는 성질을 가지기에 국가간 배상을 넘어 개인 보상을 요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우에노 치즈코는 국민기금에 대해 “기금 조성은 적절한 선택이었으며 기금의 대체안은 생각하기 힘들다”며 입장을 바꿨다. 김 교수는 이에 “개인 보상의 논리를 방치한 우에노 치즈코의 페미니즘은 내셔널리즘을 넘지 못했다”며 우에노 치즈코가 국민기금에 대한 원래의 입장에서 선회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또 김 교수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한 고우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고우노·무라야마 담화는 ‘탈식민지화’의 출발선에 머물러, 국민 사이에 넓게 인식이 공유되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오히려 두 담화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보수 세력에게 불만을 제기할 빌미가 돼 역사 인식의 ‘재식민지화’를 조장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김 교수는 일본 보수의 ‘재식민지화’를 교육, 미디어, 인터넷, 정치의 4가지 측면에 있어서 자세히 분석했다.

토론에 대한 제언 및 질의응답 시간에는 와다 하루키와 우에노 치즈코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양현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위안부 문제는 전쟁 범죄라기보다 한국이 일종의 일본에 대한 협력국으로 전쟁에 동원된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매우 특수하다”며 “위안부 문제를 인도주의적 관점이 아닌 탈식민주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은 문제의 본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며 발제에 대해 평했다. 뒤이어 양 교수가 제기한 “왜 일본 우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가”라는 질문에 김 교수는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지금 현재의 일본을 건설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일본인의 주된 정체성을 형성했다”며 “냉전 종결 후 일본의 침체와 맞물려 한국, 대만 등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그 고유의 정체성이 위태로운데다 자신들이 ‘남에게 폐를 끼쳤던’ 사례인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니 정체성에 더욱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과거사의 문제가 아니라 신냉전시대의 새로운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여성연구소 김수진 연구원은 “탈냉전시대에 일본이 겪고 있는 국가 정체성 문제는 우리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탈냉전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일 지식인 사이에 연대가 있어야 하며 이번 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국민들의 역사 인식과 자기정체성을 재정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이번 집담회의 의의를 언급했다. 최근 일본의 우파가 정치세력의 주류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민족주의를 넘어선 탈식민주의적인 냉철한 판단이 요구됨을 시사했다. 또한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공통된 역사인식으로 ‘탈식민주의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발걸음을 뗐고, 이를 통해 양국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기금: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달성하기 위해 보상 사업으로 설립한 기금. 1997년 1월 서울에서 피해자 5명에게 위로금과 수상의 편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한국측이 “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라며 반발해 그동안 위로금 지급이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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