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는 묵형, 의형, 월형, 궁형, 대벽 등 다섯 가지의 형벌이 있었다고 한다. 묵형은 먹으로 죄명을 몸에 새기는 형벌이며, 의형은 코를 베는 것, 월형은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것, 궁형은 생식기능을 제거하는 것, 마지막으로 대벽은 사형을 의미했다. 이 중 궁형은 통상성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내려진 것인데 명나라에 이르러서는 남의 후사를 끊는 것이 인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금지된다. 반면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는 궁형에 관한 기록이 없는 대신, 고대 이래로 강간, 간음에 대해 사형, 노비형 등의 처벌을 행했다. 조선시대에는 강간의 경우 교수형, 강간 미수의 경우 곤장 100대, 유배 1천리라는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최근 성폭행 사건이 연달아 언론 매체에 등장하면서 대책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주요 언론들은 관련 사건을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형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듯 보이고, 정부·여당은 이에 질세라 불심검문 강화, 화학적 거세 확대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 의원 19명은 ‘성폭력 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성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를 실시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미 600여 년 전 중국에서 반인륜적이라 하여 폐기된 형벌이 다시금 거론되는 것을 보자니 역사의 진보라는 말이 허망하게 여겨질 뿐이다. 화학적 거세가 그럴 듯한 방안으로 제시되긴 하지만, 인권침해와 실효성 측면에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성충동이 왜곡되거나 억제되지 않아 범죄의 가능성이 높다면 약물에 의한 조절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본인의 동의여부 문제, 약물의 부작용 문제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시행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신고되거나 적발되는 성범죄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현실에서 성폭력 방지 대책으로 형벌의 강화만을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성충동만이 성폭력 발생 원인은 아니며 상당수의 성범죄는 자신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 소외감, 또는 남성다움의 과시에 기인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 대한 외면 및 비하, 그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부실함 등이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인 것이다.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사후 처벌에만 주력한다면, 마치 암환자에게 진통제만을 처방하는 것처럼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필요한 것은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그들 자신에 대한 대책이다. 여기자 성추행, 여자 아나운서 비하 발언, 제수 성추행 등을 저지른 동료들의 비행에 대해 정작 그들은 미적지근한 대응만 내놓았다. 거세 운운하기 전에 자신부터 되돌아보고 혹시 약물 처치가 필요한지 고민해 보시라. 물론 본인의 동의여부 확인은 필수.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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