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서울대 대학원, 이대로는 안 된다 ②

연재순서
①학업과 학비, 이중고에 시달리는 대학원생
②대학원생이 본 '연구중심 서울대'의 맨얼굴
③몸도 마음도, 대학원생 건강상태 '비상등'
④일그러진 사제관계, 잠들어 있는 대학원생 인권



“대학원생이 되고 보니 대학원생은 학생과 실험실 직원 사이의 중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업 외에 시간에는 연구를 해야 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는 교수님이 따온 프로젝트에 따라 할 일이 주어집니다. 또 저희 과와 같은 이공계의 교육과정은 실제 실험보다 관련 이론만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실험실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는데 과연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요? 대학원에 왔지만 석사 신입생은 딱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학기 『대학신문』에서 실시한 대학원생 설문조사 자유기술란에 남겨진 이 말처럼 대학원생들은 △연구공간 부족 △과다한 연구 외 업무 △불충분한 연구지도 △자율적인 연구기회 부족 △대학원 수업의 낮은 만족도 등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선 대학원생들은 연구공간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인문·사회계의 경우 2인 1책상을 사용하는 등 더욱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대학원생은 “연구실이 없는 대학원생들은 학부생과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를 맡아가며 어렵게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인문대의 한 관계자는 “대학원생 수를 집계해 1명당 3㎡의 면적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대학원생들이 느끼는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학생회장 노태훈씨는 “국문과의 경우 등록한 대학원생 수가 100명이 넘지만 대부분 개인 자리가 없는 상태”라며 “비어있는 자리 찾기에 바쁠 정도로 연구공간이 협소한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도 “항시 공간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건물 내부를 살피면 실제로 사용되는지 의문이 생기는 공간이 많다”며 “공간 활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더욱이 인문대가 공간배정시 고려하는 대학원생에는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 중인 대학원생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길게는 5년 이상 소요되는 논문 작성 시기에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공간 부족, 과중한 잡무, 불충분한 지도… 열악한 연구환경에 대한 아쉬움 쏟아져

또 많은 대학원생들은 과중한 잡무로 연구시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잡무가 너무 많아 연구에 집중하기 힘들다”며 “하루 종일 잡무만 처리해야 하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자연과학계의 다른 대학원생도 “연구 프로젝트, 연구실 잡무, 교수님 잡무의 분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연구실의 총 업무량과 연구생 인건비, 연구생 수를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강령이나 학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대학원의 대학원생도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실 내 행정 처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 또한 대학원생의 업무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자연대의 한 교수는 “연구실마다 여건은 다르지만 전담직원이 있어야 대학원생들이 수업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고 연구비에 대한 투명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대학원생들은 교수에게 충분한 연구지도를 받기 어렵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인문·사회계의 한 대학원생은 “한 교수님 아래 너무 많은 대학원생이 있어 교수님이 원생 한명, 한명을 봐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대학원의 대학원생도 “교수님의 보직 및 연구년 등으로 충분한 지도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원생 역시 “석사 1,2,3학기 때에는 연구와 관련해 교수와 학생 사이의 지식 논의가 전무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자연과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고 외부 특강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이름과 연구 주제조차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공계의 경우 대학원생들의 자율적인 연구기회를 보장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공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학교의 무리한 등수 올리기 정책으로 의미 없는 SCI 등재용 논문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학문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발적인 연구활동이 장려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연과학계 대학원생도 “실험실 내 실험도 중요하지만 개인 연구시간도 확보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예체능계의 대학원생은 “교수 연구 지원만을 위해 학생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제도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협동과정의 대학원생도 “하고 싶지 않은 실험 주제를 억지로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학원 수업 개선을 원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자연과학계 대학원생은 “대학원 수업이 너무 부실해 사실상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며 “융합학문과 같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강의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경영대의 한 대학원생도 “들을만한 수업이 없는 학기가 많았고 통계적 분석 관련 과목은 심리학과나 경제학과 등 다른 학과에서만 수강할 수 있다”며 “경영학 내에서도 여러 부문의 특성을 반영한 수업은 전무하다”고 토로했다. 전문대학원의 한 대학원생도 “개강이후 한달 동안 교수가 맡은 다른 직책을 이유로 수업을 하지 못하고 박사과정 조교가 이를 대신했다”며 이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나 제도적 안전망을 요구했다.

이렇듯 대학원 수업의 질 향상에 대한 요구는 많지만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장치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학부에서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강의평가도 대학원에서는 선택사항이라 이를 실시하는 학과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홍기현 교무처장은 “대학원 수업은 소수정예라 교수님과의 직접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강의평가를 시행하지 않은 것 같다”며 “이번학기에 미래교육팀이 신설되는 만큼 대학원 내실화와 교육 강화를 위해 집중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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