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대학로 호객 행위 진단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와 대학로에 들어서면 넘쳐나는 호객꾼과 그들이 뿌려대는 전단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언젠가부터 대학로는 주말과 평일 가릴 것 없이 속칭 ‘삐끼’들의 호객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언제부터 대학로가 호객꾼들로 범람하게 됐을까.

호객 행위에 상처받는 대학로

호객꾼들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은 무엇보다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다. 거부 의사를 표시해도 끈질기게 따라오거나, 손을 잡아끌고 가는 등 관객들 사이에서 ‘납치 수준의 호객 행위’는 이미 악명이 높다. 호객 행위의 폐해는 단지 관객의 불편 호소에 그치지 않고 대학로의 이미지 추락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1년 서울연극센터가 현장 관람객 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6.6%의 관객이 대학로의 ‘호객행위와 상업적 변질’이 가장 불편하다고 답했다.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자주 온다는 장지영(동국대학교 산업공학과·11)씨는 “대학로에 갈 때마다 끊이지 않는 호객 행위가 불쾌해 대학로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호객 행위가 이뤄지는 작품들의 수준도 문제다. 소극장협회의 한 관계자는 “호객 행위를 하는 공연들은 대부분 전문 연극인들의 공연이 아니다”라며 “연습 수준의 공연을 저렴한 가격으로 홍보하던 관습이 호객 행위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 한국연극배우협회 등의 전문연극 단체에 속해 있는 연극인들은 호객 행위를 근절하기로 협약을 맺고 정당한 방법으로 연극을 홍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

사진: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또한 질 낮은 공연의 홍보가 마구잡이로 이뤄지다보니 정당한 방식으로 홍보 중인 다른 연극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연극센터의 「2011년 대학로 연극 실태 조사」에서 대학로의 무대에 오른 작품을 분석한 결과 예술성과 실험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공연들의 수와 공연 일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호객 행위 근절,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대학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삐끼 근절 사업 퍼포먼스 캠페인’을 실시해 매주 토요일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연극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사과를 나눠줬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또 2012년 4월 한국소극장협회 정대경 대표가 1인 시위를 벌이며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해 많은 지지를 얻었으나 실제 호객 행위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소극장협회의 전언이다.

호객 행위가 대학로의 공연 문화 전반에 악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단속이나 처벌이 경미한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호객 행위는 경범죄처벌법 제1조 10호 ‘물품강매 청객행위’로 즉결심판 회부대상이지만 그 기준이 애매해 단속하기 까다롭다는 것이 경찰측의 입장이다. 대학로 파출소 3팀장 서정복 경위는 “호객꾼들이 대부분 불법 행위임을 모르는 아르바이트생이기에 처벌이 어렵고,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즉심조차 불가능하다”며 어려움을 표했다. 호객꾼들에게 경찰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조치가 즉결심판인데, 법원에서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아도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석하지 않아도 5만원 정도의 벌금만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대학로에서 실제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호객꾼 A씨는 “관객을 공연장으로 안내하거나 표를 팔면 표 값의 20%에서 30%를 수수료로 받는다”며 “아르바이트 사이트에서도 특별한 제한 없이 모집하고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객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홍보 시스템이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줘야 하는 티켓박스의 운영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혜화역 2번 출구 마로니에 공원 입구에 2개, 혜화역 4번 출구 서울연극센터에 1개의 티켓박스가 설치돼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직원이 충분하지 않아 이용자가 적고 운영이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다. 조명우(경인교대 윤리교육과·11)씨는 “티켓박스에서 표를 사는 것 이외에 연극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며 “오히려 호객꾼들이 들고 다니는 전단지에서 얻는 정보가 더 많을 정도”라고 티켓박스 운영 문제를 짚었다.

대학로 내부에서도 호객 행위 근절 메시지를 좀 더 지속적이고 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극계에서는 “대학로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두홍보에 치중하기보다 근본적으로 관객들이 연극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주장이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기보다 대학로 연극 문화 전반의 수준을 제고하면서 관객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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