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교과서, 진화론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과학교과서, 진화론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 대학신문
  • 승인 2012.09.16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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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진화론 둘러싼 과학 교과서 논쟁

작년 12월과 올해 3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는 국내 과학 교과서에 “진화론은 실험적 증명이 불가능한 추론”이라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 청원을 제출했다. 교진추는 청원서에서 “진화가 일어나는 현장을 관측한 적도 실험한 적도 없다… 진화는 추론된 것이다…(중략)… 실험을 하지 않은 추론은 과학적 사실이 될 수 없다”고 언급하며 진화론의 과학적 당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뒤이어 교진추는 “진화론의 내용 중 명백한 오류로 판명된 내용-시조새가 조류와 파충류의 ‘중간종’이라고 서술한 내용과 말의 진화과정을 서술한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내용은 그 이유와 주장을 모두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 참고)


세계가 주목한 뜨거운 감자

교과부는 이번 교진추의 청원 내용을 7종의 과학교과서 출판사와 편집진에게 그대로 전달했고 일부 출판사와 편집진이 청원된 내용을 반영해 “삭제하거나 수정하겠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Nature」(네이처)는 6월 초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했다(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전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한국 과학계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팀을 조직해 사태의 진화에 나섰다. 결국 지난 5일(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림원)은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론 중 하나이므로 모든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라면서도 “진화론의 현대 과학적 의미와 해석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논란이 제기됐던 시조새와 말의 진화에 대한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또한 이와 함께 한림원이 ‘고등학교 과학교과서 진화론 내용 수정·보완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한림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직후 교진추는 “진화론은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았기에 서로 다른 해석체계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진화론 개정 청원 작업을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정리한 문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번 사건에 대한 과학계의 대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장대익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이러한 주장은 과학을 ‘all or nothing’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라며 “과학은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그럴 듯 한가’하는 상대적인 싸움”이라고 교진추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어 당분간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엇갈리는 주장과 진화론을 둘러싼 공방

교진추 이광원 회장은 “현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진화론 관련 내용들에는 1950년대 학계에서 논의됐던 내용들조차 반영되지 않았다”며 “진화론을 삭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증거에 대해 최신 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라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회장은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현대과학의 중요한 핵심체계라고 생각해 그에 대해 다른 주장을 펴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림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구성한 전문가협의회의 일원이자 진화생물학 전문가인 황의욱 교수(경북대 과학교육학부)는 “교진추가 종교적 색채를 띤 단체에서 파생된 조직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교진추의 청원이 교과서 진화론 부분의 진술에 있어 부실한 부분을 지적한 측면도 있다”며 “이번 청원이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 부분의 서술을 이전보다 더욱 보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장대익 교수는 “결국 교진추는 창조과학회의 영향 하에 있는 단체”라며 “교과서에 특정 종파가 개입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며 이러한 청원에 대해 일차적인 거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는 교과서 집필 체계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재의 교과서 발행 시스템에서는 교과서 개정 청원을 처리하는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 이는 2009년 교과서의 발행체계가 ‘검정교과서 방식’(국가가 출판사가 집필한 교과서의 내용을 검증해 허가를 내주는 방식)에서 ‘인정교과서 방식’(출판사가 집필한 교과서를 시도교육감이 심의회를 열어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지금의 교과서 청원 시스템은 청원을 처리할 기관이 없어 청원이 들어와도 저자들이 답을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라며 “매번 현 사태와 같이 한림원 패널을 만들어 대응할 수 없으니 특정한 목적을 갖고 교과서 내용에 대해 청원하는 그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황 교수는 “교과서 집필진도 자신의 전공 영역이 아닌 부분에 대해 교과서를 집필할 때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과학교과서 집필 과정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전망

교과부는 한림원이 제시한 △시조새가 조류와 파충류의 중간에 존재하는 유일한 종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 조류가 맞으며 △말의 진화는 점진적 직선형 경로가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따라 복잡하게 진행됐다는 가이드라인을 각 출판사에 전달할 예정이다. 황 교수는 “인정교과서 시스템 시행 초기에 일어난 일이어서 교과부의 초기 대응이 다소 미숙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에는 과학창의재단이나 서울시 교육청이 관련 청원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 교수는 “과학교과서 개선이 과학자 사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종교적 청원에 의해 이뤄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특히 이번 일의 해결 과정에서 교과부가 규정에도 있지 않은 한림원의 힘을 빌리는 초법적인 일을 벌였고 이는 앞으로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진화론을 둘러싼 작금의 교과서 논쟁에 대해 황 교수는 “전문적인 진화학자들이 많지 않은 탓에 이런 논란들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앞으로 진화와 관련된 최신 자료들을 꾸준히 발굴 지원함으로써 새롭게 밝혀지는 학문적 성과들이 교과서 집필이나 학생 교육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학계와 교육계가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과학 지식을 전할 수 있도록 작금의 사태에 대해 교과부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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