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재] 시인의 서재 ① 함민복 시인

시인들의 책꽂이에는 어떤 책이 꽂혀있을까. 작품을 써내는 이들은 어떤 작품에 울고 웃었을까. 『대학신문』은 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여러 연령대의 시인 4명의 서재를 살짝 들여다본다. 서재에 꽂힌 작품을 통해 독자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만나보자.

연재순서
①함민복 시인
②김소연 시인 ③이이체 시인 ④신해욱 시인


 

손택수 시인, 「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 


가지런하게 한쪽 방향을 향해 누운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달려 있다고 한다

역린(逆鱗), 유영의 반대쪽을 향하여 날을 세우는 비늘 하나

더러는 미끼를 향해 달려드는 눈먼 비늘들 사이에서 은빛 급브레이크를 걸기도 하였을까

역적의 수모를 감당하며 의롭게 반짝이기도 하였을까

제 몸을 거스르는 몸, 역린,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내가 나를 펄떡이게 할 때가 있다

십년째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낙향 물고기 비늘을 털며 사는 친구놈의 얘기다



이제 개장으로 참새가 날아들지 않는다. 좌우로 고개를 연방 돌리며 조심스럽게 날아와 개가 남긴 밥알 물어 나르던 참새들을 더 이상 개장에서 볼 수 없다. 참새들은 메뉴를 바꿔 이웃집 수수밭으로 날아가, 낱알 무게에 휘어있던 수수대궁의 긴 목을 곧추세워놓고, 새 쫓는 이웃집 할머니의 목소리도 수수빗자루의 감촉처럼 까슬까슬하게 만들어 놓았다.

가을이다. 물의 사춘기 물여울 같은 봄이 어제 같은데, 벌써 풀벌레 울음여울 끊어지지 않고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가을이다. 저 풀벌레 울음소리를 역류할 수 없으니, 또 한 살 나이 먹을 준비를 해야 할 터. 계절에도 역린이 있다면, 서정적인 면을 중히 여겨본다면 마음이 심하게 출렁이는 가을이 아닐까 싶다.

나를 당황시킨 낱말 역린(逆鱗). 한비자는 「사람을 설득하는 어려움, 세난(說難)편」에서 용의 역린을 언급했다. 용은 유순 하나, 81개의 비늘 중 턱 밑에 한 자 정도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하며, 용으로 상징 되는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으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말아야 군주를 설득할 수 있다고 했다. 용 아닌 물고기의 역린이라니. 정말 물고기 비늘 중에 거꾸로 박힌 비늘이 있을까. 물고기 공부를 한다고 떠벌리며 살아온 내 자존심을 처참하게 무너뜨려준 역린. 십여년 남짓 고기 잡는 친구 배를 타며 반 뱃사람으로 바닷가에 살아왔건만 역린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고기마다 옆줄의 모양이 다르다고, 민물고기보다 바닷물고기의 옆줄은 파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곡선의 굴곡이 심하다고, 물고기 비늘을 자주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보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역린. 물고기 비늘은 당연히 한 방향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매여 물고기들을 대면한 결과일 것이다.

내가 일정한 틀에 갇혀 사물들을 건성으로 대하고 있음을 각성시켜준 이 시를 나는 좋아한다. 시는 세계를 좀 더 풍요롭게 보라고, 지금 보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창을 열어주는 것 같다. 이 시를 읽은 독자들도 앞으로 물고기를 보게 되면 비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물고기의 다른 모습을 읽어내려는 눈씨가 맵게 될 것이다.

시는 어쩌면 일상에 젖어 살아가는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지금 드는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는 볼 수 없는데, 하고 ‘은빛 브레이크’를 밟아 보는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시의 본질이 일상에 제동을 거는 비린 비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치 죽음이 우리 삶에 역린으로 박혀오면서 우리 삶 구석구석을 간섭하는 것처럼.

시는 역린이다. 시는 앞으로 질주하는 백미러다. 시는 하늘을 향해 자라던 식물들이 땅으로 씨앗을 떨어뜨리는 가을이다. 시는 개장에서 들판으로 나서는 참새의 설렘이다.

 



 

1962년 충북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등의 시집 발간.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박용래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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