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기 전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현장 두 곳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도림천 하류가 2년 연속 범람하면서 큰 재산피해를 입어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일종의 전문가 자문형식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가 주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버들골과 캠퍼스 인근의 관악산 생태공원 내에 대규모 저류조를 건설하고 그 사이를 지나는 산지하천을 정비하는 계획이었다. 건설 중인 강남순환고속도로의 터널에 물을 가두겠다는 약간은 황당해보이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도림천 범람방지를 위해 소요될 예산이 약 360억, 그중 일부는 서울대와 협의한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나같이 순수학문을 하는 ‘재야’ 지리학자를 토목현장에 불러준 것도 감읍할 일이었고 동행한 관계자의 열정에서 우리 사회의 방재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위안도 얻었다. 하지만 이 두 공사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었다. 하천의 하도를 준설하고 직강화하면 내린 빗물들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흘러가게 되고 결국은 유속과 유량을 늘려 하류의 범람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캠퍼스내에 물탱크를 만들어 일시적으로 빗물을 가둔다고 하더라도 그 양은 제한될 것이 뻔한 일이다. 원인은 엉뚱한 곳에 있는데 서둘러 토목공사를 벌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구실로 돌아와 재해에 관심을 가진 대학원생에게 도림천의 범람 역사를 조사해봐 달라고 부탁했다. 예상대로 도림천의 장기간 유량자료는 구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도림천이 합류하는 안양천의 수위자료를 가지고 왔다. 젊은 학생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1998년까지 안양천은 일년내내 물이 흐르는 하천이었다. 하지만 이후 여름과 겨울의 수위가 점점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2005년 겨울부터는 물이 아예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여름철 2-4달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 돼 버렸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강우 시 최고수위 도달 시간이 90년대 초반에는 하루 이상이었는데 2000년대 후반에는 몇 시간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림천 범람 원인은 너무나 자명해졌다. 과거 일년 내내 분산되어 흐르던 물이 이제는 여름 한 철 다 흘러버린다. 특히 유역의 모든 물들이 일시에 하천으로 집중되면서 저지대가 침수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하천을 하수도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1993년 ‘안양천 고수부지 활용계획’, 2001년 ‘안양천 살리기 종합계획’ 등이 수립되면서 본격적인 하천정비가 이뤄졌다. 시대를 바꿔가면서 ‘하천정화사업(80년대)’, ‘고수부지 활용계획(90년대),’ ‘생태하천건설(2000년대)’ 등의 이름을 걸고 반복해서 이루어진 하천준설과 직강화는 빗물이 하천주변에 머물 시간을 주지 않았고 그 결과는 하류 저지대의 침수로 이어진 것이다. 이 시점이 되니 이젠 다시 재해방지를 위한 토목공사를 진행하고 그 이름 앞에는 ‘친환경’ 혹은 ‘녹색성장’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고 있다.

한국이 ‘토건국가’라는 비판은 하루이틀 전의 일이 아니다. GDP의 약 20%를 토건사업이 차지하고, 현 정부가 벌이는 각종 하천정비사업들을 보면 단기간에 토건국가의 오명을 벗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토지에 대한 수요가 높고, 국토의 70%가 산지이고, 하상계수(최대유량대 최저유량의 비율)가 600을 넘는 기후를 보면 치산치수를 위한 토건산업의 비중이 높은 것은 백번 인정한다. 다만 좀 더 스마트한 토건국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공사를 벌이기 전에 공사비의 1/100이라도 투자해서 도림천의 홍수발생원인을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연구하면 안될까? 우리나라 지표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선투자를 하고 그 결과를 실무에 적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높은 편익과 고용창출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닐까? 잘 작동하고 있는 하천을 토목공사를 통해 억지로 바꿔놓고 그 결과가 재난으로 다가오는 시점에서 또 다른 토목공사를 벌이는 일들은 제발 그만 했으면 한다.

 

박수진 교수(지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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