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초등학교 이후 거의 10년만이었다. 대입 원서접수를 위해 관악에 와보니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길 위에 눈이 질펀해서 미끄러지지 않게 잰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여기에 오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그렇게 책과 씨름하면서 불안해했다는 것이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다.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얼마만큼의 추억을 만들어야 내가 이 낯선 공간에 적응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언제나 그렇듯이 파이팅 넘치게 시작이다.

다시 10년이 지났다. 오랜만에 묵혀둔 앨범을 꺼내 신입생환영회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어디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옷들에 머리는 왜 노란색인지. 정확히 백년짜리 놀림감이다. 처음 만나 후배 또는 동기라는 이름만으로 그렇게 환하게 맞아주던 사람들과 세상모르고 밤새도록 마셔대던 그때 이후로 10년이 지났다. 두 번의 휴학과 군입대, 동기들에 비해 조금 늦었지만 여전히 1년의 대부분을 관악에서 지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10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차근차근 기억을 끄집어내어 줄을 세워 전부 따져보면 1년 정도의 분량만으로 압축되겠지. 그럼 9년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또 머리를 쥐어짜고 또 짜보면 반년 정도의 기억이 떠오를 테고 여전히 턱없이 모자라는 나의 8.5년. 3년 전 어느 날 느지막이 일어나 가볍게 씻고 대학원으로 출근하던 기억은 너무나 일상적이라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결국 내 10년의 8할은 일상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상자에 조용히 담겨져 있다.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기에 이 일상이라 이름 붙은 상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많은 일들이 일상이 되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이듦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또 10년이 지날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또 10년은 지날 것이고 그렇게 ‘불혹’은 찾아오겠지. 항상 그렇듯, 앞부분만이 손때 묻고 빼곡한 일년 분량의 일기장처럼 서른이라는 일기장을 의욕 충만하게 채워나가고 있다. ‘후회 없는 삶이란 없다’는 말처럼 이번 10년 또한 돌이켜 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일들이 생길 테지만 후회를 줄이고 가슴 뭉클한 뿌듯함을 늘리기 위해 또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가끔 일상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관악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10년을 함께한 관악이 빛나는 순간.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관악의 산줄기에 겹쳐진 그림이 시야에 넘치도록 들어오는 순간. 고된 하루를 마치고 정문까지 걸어가는 길에 자욱하게 낀 연무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살짝살짝 고개를 내미는 순간에 관악산 계곡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올라 치면 한없이 감정이 북받쳐 올라 지난 10년이 무색해지는 그런 순간. 일상에 가려져 있던 관악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맞게 되면 한번쯤은 돌아보자. 나에게는 10년이라는 시간으로, 그대들에게는 각자의 시간으로 들이닥치게 될 그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지금부터 나에게 10년이 주어진다. 하루 3시간씩 10년을 꾸준히 하면 1만시간. 누구나 달인의 경지에 오른다고 한다. 하지만 ‘달인’이 되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나. 그럭저럭 10년을 살아도 1년하고도 반만큼의 아련한 추억들이 생기는 것을. 이번에 주어진 10년도 전의 10년만 같아라. 생각만 해도 행복하니까.

 

김형건 석·박사통합과정
산림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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